지창수 상사의 지휘하에 약 3,000명의 반란군이 여수 시내로 향한 것은 20일 01 : 00경이었다. 반란군은 미리 연락을 받고 영내에 들어와 있던 민애청(民愛靑)소속의 서종현(徐鍾鉉)을 비롯한…
지창수 상사의 지휘하에 약 3,000명의 반란군이 여수 시내로 향한 것은 20일 01 : 00경이었다. 반란군은 미리 연락을 받고 영내에 들어와 있던 민애청(民愛靑)소속의 서종현(徐鍾鉉)을 비롯한…
제14연대는 1948년 5월 4일 여수에서 창설되었다. 창설 요원으로는 당시 광주에 주둔하던 제4연대의 1개 대대가 차출되었으며, 초대 연대장은 제4연대 제1대대장이던 이영순(李永純) 소령이었다. 연대 주둔지는 일제…
제9연대와 임무를 교대한 후 지형파악도 하기 전에 기습을 받았던 제2연대는 1949년 1~2월 선무공작으로 산에 올라간 주민들 상당수가 하산함으로써 귀순할 사람은 대부분 귀순한 것으로 잠정…
제9연대로부터 임무를 인계받은 제2연대는 연대본부를 제주비행장에 위치시키고 제1대대를 남쪽 서귀포에, 제3대대를 북쪽 오동리에, 제2대대를 연대예비로 제주읍에 각각 배치하여 필요시 신속히 증원할 수 있는 태세를…
경비대사령부는 제11연대가 복귀함에 따라 제5연대의 1개 대대, 제6연대의 1개 대대로 제9연대를 재편성하고 연대장에 제11연대 부연대장이던 송요찬(宋堯讚) 중령을 임명하였다. 재편성된 제9연대는 8월 한달…
1948년 5월 5일 오전 7시 딘(William F. Dean) 군정장관은 안재홍 민정장관, 조병옥 경무부장, 송호성 경비대사령관 등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해 진압작전을 위한 최고 수뇌부 회의를…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를 기하여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는 한라산 정상과 주요고지에 일제히 봉화를 올리는 것을 신호로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인민유격대및 자위대원 350명은 도내 16개 경찰지서…
1947년에 접어들면서 미군정은 남한내 좌익세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였다. 이 시기에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미소공동위원회(美蘇共同委員會 : 이하 ‘미소공위’)를 통하여 한국의 통일정부 수립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이미…
조선총독부는 항복선언 직전에 패전 후의 치안문제와 정치범 석방, 일본인의 보호를 위하여 한국내 지도급 인사들과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그 접촉 대상 인물로는 중도 좌파 성향의 여운형(呂運亨),…
영암 군경 충돌사건은 1947년 6월 3일 전남 영암에서 국방경비대 제4연대 제1대대와 영암 경찰간에 발생한 무력 충돌 사건이었다. 광주 주둔 제4연대는 창설 초기부터 대원들의 자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