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대사령부는 제11연대가 복귀함에 따라 제5연대의 1개 대대, 제6연대의 1개 대대로 제9연대를 재편성하고 연대장에 제11연대 부연대장이던 송요찬(宋堯讚) 중령을 임명하였다.

재편 9연대 편성
재편성된 제9연대는 8월 한달 동안 부대정비와 훈련을 실시하고 9월 초부터 제11연대의 작전개념을 그대로 적용하여 토벌작전을 개시하였다. 당시 인민유격대는 한라산을 정점으로 사방의 능선을 따라 동으로는 어승생악-관음사-송당-당오름-신촌 경계선, 그리고 어승생악-산천당-오라-월평-노형 경계선, 서쪽으로는 성판악-웅악-산방산-창산-모록밭-남송악 경계선 등으로 활동무대를좁혔다. 이처럼 대열을 정비하고 전술을 달리한다 하더라도 한라산의 자연조건은 장기화하면 할수록 인민유격대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국군이 해안선을 봉쇄하고 주민과의 연계만 두절시키면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거의 불가능하였으며, 한라산 봉우리는 수목이 거의 없어 압축할 경우 자연동굴이 많다 하더라도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특히 주민들은 한정된 지역에 밀집되어 있고 그나마 토착적이며 혈연적으로 형성되어 있어 군경에 의한 당조직 파괴와 인적 추적 및 검거가 유리하였다. 더욱이 군경의 토벌작전이 강화되자 인민유격대는 좌익계 주민들과의 연계가 두절되고 식량과 무기 등 생존에 필요한 물자조달이 매우 힘들게 됐다. 이에 따라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는 인민유격대의 수를 줄이는 한편 일부를 하산시켜 부락과 산속에 있는 인민유격대와의 연계를 맺게 하여 소위 ‘식량생산 확보투쟁’을 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8년 8월 21일 황해도 해주에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인민공화국’ 수립을 목적으로 남부지역에 할당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주도 대표로는 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달삼을 비롯해 고진희, 강규찬, 문등봉, 이정숙, 안세훈 등이 참가했다. 김달삼의 해주인민대표자대회 참가로 인민유격대는 이덕구가 이끌게 되었으며, 1948년 10월 1일 러시아혁명기념일을 기해 또다시 기습 폭동을 일으켰다. 10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 함덕, 조천, 서귀포, 모슬포, 남원면 일대의 지서가 습격을 받았다. 이렇듯 제주도에서 인민유격대의 활동이 재개되고 이로 인한 혼란상태가 계속되자 경비대사령부는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제5여단장 김상겸(金相鎌) 대령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제주도경비사령부 편성 <1948. 10. 11 현재>
그러나 김상겸 대령은 제주도경비사령부가 작전을 개시한 지 10일만에 제5여단 소속 여수 주둔 제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지휘 책임을 물어 파면되고, 제9연대장 송요찬 중령이 후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제주도경비사령부의 작전개념은 대대별로 작전책임지역을 할당하여 지역경비와 토벌작전을 병행하는 것이었다. 당시 부대배치는 제1대대가 중앙지역인 제주읍에, 제2대대가 동쪽지역인 성산포에, 제3대대가 서쪽지역인 모슬포에 각각 위치하고 중대별로 전술책임지역을 할당하여 경비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리고 유격대의 출현 규모에 따라 중대 단독 또는 대대 단위로 작전행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인민유격대는 제14연대 반란사건에 크게 고무되어 더욱 기세를 올리고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이로 인해 작전의 주도권을 잃은 경비대는 오히려 수세로 몰리게 되어 방어태세를 강화하면서 제14연대 반란군의 제주도 침투에 대비하여 해군과 합동으로 해안 봉쇄작전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 작전기간 중 제9연대는 일부병력을 제14연대 반란군으로 가장해 조천지구에 상륙시켜 이에 동조하는 무장대를 소탕하려는 작전을 계획하기도 했다. 이 작전계획은 제주읍에서 동쪽으로 10㎞ 떨어진 조천지구의 인민유격대를 토벌하기 위해 수립되었는데, 이근양 중위가 지휘하는 제5중대의 일부병력이 해상에서 제14연대 반란군으로 가장해 상륙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실제로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지만, 작전계획이 경찰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연대내에 침투한 좌익 세력의 존재가 드러나 80여 명을 검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연대내의 좌익세포 검거가 있은 후 제9연대는 중산간 지역 주민들의 하산을 권고하는 포고문을 살포하고 10월 말부터 본격적인 토벌작전에 돌입하였다.
이 시기 제주도경비사령부의 주요 작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주도경비사령부의 주요 작전 현황
제9연대와 경찰의 효율적인 토벌작전에도 불구하고 인민유격대의 활동은 끈질기게 지속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최후의 소탕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1948년 12월 29일 대전에 주둔하던 제2연대를 제주도에 투입해 제9연대와 임무교대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