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연대는 1948년 5월 4일 여수에서 창설되었다. 창설 요원으로는 당시 광주에 주둔하던 제4연대의 1개 대대가 차출되었으며, 초대 연대장은 제4연대 제1대대장이던 이영순(李永純) 소령이었다. 연대 주둔지는 일제 말 일본해군항공기지가 있었던 여수 신월리였다. 제14연대 창설요원으로 차출된 1개 대대 병력 가운데는 제4연대의 이른바 문제아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는데, 경비사관학교 3기생인 김지회(金智會), 홍순석(洪淳錫) 중위와 제4연대 1기생인 지창수, 정낙현 상사 등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여수에 주둔한 제14연대는 곧 신병모집에 착수했다. 다른 연대에서도 그렇듯 제14연대의 신병모집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불온사상 여부에 관계없이 지원자는 무조건 입대시켰다. 게다가 제14연대로 차출된 김지회 중위가 제1대대 제1중대장을, 홍순석 중위가 순천파견대장을 각각 맡았으며, 지창수 상사가 인사처 선임하사, 정낙현 상사가 정보처 선임하사로 있으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당시 남로당에서는 국방경비대내에 자파(自派) 세력을 침투시키기 위해 활발한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8년 3~4월의 미군정보고서에는 “경상북도와 전라남도의 공산주의자들이 국방경비대 침투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들은 경비대가 남한에서 권력 탈취에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군내 침투를 위해 남로당은 각 시․군당에 사병 추천을 지시하고 선발된 사병들은 연대 공작을 담당하는 도당 파견 조직원을 통해 각 대대, 중대, 소대에 배치했다.
제14연대의 경우에는 전남도당(全南道黨) 군사부에서 지도원이 파견되어 있었고 연대 내에 당의 오르그(조직지도원)가 침투하여 조직의 확대․강화에 주력하였다. 당 오르그는 연대내의 군조직책인 연대인사계 지창수와 유기적이고 밀접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도당(道黨)에서 추천한 청년들의 입대와 배치, 우익계 청년들의 입대 저지 등의 활동을 전개하면서 세력을 확대시켜 나갔다. 당시남로당 전남도당 조직부 과장이었던 박춘석(朴春錫)의 증언에 의하면, 제14연대의 좌익계 사병 침투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제14연대 남로당 조직 건설 과정
다른 연대와 마찬가지로 제14연대의 경우도 정치적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장교와 사병간의 마찰, 일부 장교들의 부정에 대한 불만 등이 존재하였다. 이에 반해 낮은 대우, 수직적 상승기회의 결여 등으로 불만을 가진 사병들은 자신들과 지연관계를 맺고 있거나 사병들의 군 생활을 직접 통제하는 인사계 하사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런 가운데 1948년 6월 18일에 발생한 제주도 주둔 제11연대장의 암살사건을 계기로 경비대내에서는 좌익 성향의 장병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군 작업이 진행되었다. 제14연대의 경우도 연대장이던 오동기 소령이 1948년 10월 1일 ‘혁명의용군(革命義勇軍) 사건’으로 구속되자 연대 전체가 심한 혼란상태에 빠졌다. 특히 제14연대내 남로당 관련자들의 불안감은 한층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0월 15일 제14연대에는 육군총사령부로부터 ‘제주도에 파견할 1개 대대를 조속히 편성하고 대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연대 참모부에서는 극비리에 1개 대대를 편성하였는데, 남로당 관련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남로당 제14연대 조직책이었던 연대 본부의 인사 담당 선임하사관 지창수는 이러한 사실을 남로당 관련 하사관들에게 전하고 15~16일 밤에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대책회의에서 남로당 관련 하사관들은 ‘일단 제주도로 가서 총부리를 돌리자’는 방안과 ‘출동을 거부하고 영내에서 반란을 일으키자’는 방안, ‘제주도로 가는 도중 선상(船上)에서 반란을 일으키자’는 방안 등을 논의한 끝에 선상 반란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10월 19일 연대는 07 : 00에 여수우체국 일반전보로 하달된 “19일 20 : 00를 기해 LST를 출항하라”는 육군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LST 선적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연대장 박승훈 중령과 부연대장 이희권 소령은 출항전문지시가 여수우체국을 통해 일반전보로 하달되었기 때문에 기밀이 누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서 출항 예정시간을 2시간 연장하기로 결정하였다.이 무렵 연대내 반란 주모자들도 반란 정보가 누설되었다는 것을 직감하고서 선상 반란에서 영내 반란으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영내 반란으로 계획을 수정한 반란 주모자 지창수 상사는 이날 저녁에 열릴 예정이던 출동부대 환송식을 이용해 봉기하려고 준비하였다. 그러나 환송식을 이용한 봉기 계획은 장병들의 이목 때문에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이날의 환송식은 19 : 00경에 끝났고, 연대장 이하 지휘부는 먼저 항구쪽으로 가서 화물의 탑재를 감독하였다. 그리고 출동부대인 제1대대는 수송 요원을 제외하고 전병력이 대대 막사 옆의 콘크리트 바닥에서 휴식을 취했으며, 환송회식에 참가했던 장교들은 회식이 끝난 후 출동 부대 장교와 야간 근무자를 제외하고는 모두영내·외 숙소로 돌아갔다.

여수 신월리 제14연대 주둔지
연대 내에 총소리와 비상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영내 출발시간인 21 : 00보다 1시간 전인 20 : 00경이었다. 출동 대대의 사병들은 출동 예정 시간이 앞당겨진 것으로 생각하고 서둘러 연병장에 집합하여 소총 지급을 기다렸다. 사병들은 곧 김일영 대대장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단상에 나타난 것은 연대 인사계 지창수 상사였다. 연대내의 무기고와 탄약고는 이미 남로당 관련 병사 40여명에게 탈취된 상태였다.
단상에 오른 지창수 상사는 “경찰이 우리를 습격해 들어온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최대한 실탄을 나눠 갖고 응전태세를 갖추자. 동족을 살상키 위한 제주도 파병에는 절대 반대한다. 경찰을 타도하고 남북통일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궐기하자. 실은 지금 북조선 인민군이 38선을 돌파하고 서울을 향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 인민해방군이 된다. 조국 통일을 위해 미국의 괴뢰들을 쳐부수자. 제국주의 앞잡이인 장교들도 모두 죽이자”라고 외쳤다. 이를 반대한 3명의 하사관은 즉석에서 사살되었다. 이후 총성과 나팔소리에 놀란 제2대대와 제3대대 사병들이 영문도 모른 채 연병장으로 나오다 경찰이 공격해 왔다는 지창수의 말과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반란군에 가담하게 되었다.
한편 여수항의 LST에서 점검과 부대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연대장과 부연대장은 23 : 00경 연대수송장교의 보고를 받고서야 반란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대장 박승훈 중령은 반란보고를 받고 사태 파악을 위해 부연대장 이희권 소령과 정보주임 김래수 중위를 귀대 조치시키고, 자신은 제14연대 제1대대의 제주도 출항을 환송하기 위해 여수에 머물고 있던 제5여단 참모장 오덕준(吳德俊) 중령을 찾아가 사건 발생을 보고하였다. 연대장과 제5여단 참모장은 즉시 연대로 향했으나 반란군들의 기세를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판단하고서 연대를 빠져나와 여수항에서 해군경비정을 타고 목포로 갔다. 목포에 도착한 참모장 오덕준 중령은 진상을 보고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고 연대장은 제5여단사령부가 있던 광주로 갔다.
이에 앞서 사태 파악을 위해 먼저 연대로 갔던 부연대장 이희권 소령과 정보주임 김래수 중위는 연대에 도착한 직후 반란군들의 공격을 받아 김래수 중위가 현장에서 즉사하고 이희권 소령만이 사태 수습을 시도하다 불가능하자 여수 시내로 빠져나왔다. 이휘권 소령은 즉시 헌병파견대에 들러 제14연대 순천파견대(2개 중대 규모) 선임중대장인 홍순석 중위에게 전화로 즉각 출동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순천지구 반란의 주모자였던 홍순석 중위는 항명하였다.
연대병력을 반란군으로 조성하는데 성공한 지창수는 자신이 ‘해방군’의 연대장임을 선언하고 반란군의 지휘체계를 수립하였다. 여기서 남로당의 고급당원이며 장교인 김지회가 반란군을 지휘하지 않고 하사관인 연대조직책 지창수가 지휘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당시 지창수와 당 오르그는 김지회를 사살하려고까지 했다. 이는 사병과 장교조직이 이원적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즉, 남로당 중앙에서 관리하는 ‘장교그룹’과 도당에서 관리하는‘사병그룹’이 점 조직 형태로 운영되면서 누가 당원인지 서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제14여대의 반란사건은 김지회를 비롯한 장교그룹이 아니라 지창수를 비롯한 하사관 그룹의 주도하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들 하사관들은 연대 병력이 연병장에 집결하자 무장한 세포들을 연병장 주변에 배치하고 선동 연설과 반대하는 하사관들을 현장에서 총살하는 위협을 섞어 삽시간에 좌익 반란군으로 탈바꿈시켰다. 지창수는 특히 병사들의 반(反)경찰 감정을 교묘히 자극했다. 제14연대 병사들은 연대내의 반경 분위기, 총성과 비명, 선동 연설, 곳곳에 박혀있던 좌익 세포들의 맞장단 등이 한데 뒤섞여 빚어진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이내 반란 동조자로 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