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실천적 자세를 위하여

 

1. 자기반성

해방 이후 한국의 철학적 흐름을 살펴본다면, 거의가 서구철학의 수입이고 그것도 각 개인의 관심에 따라 중구난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가운데 각 시대별로 주도적이었던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6-25 사변을 계기로 민중적이고 실천적인 관심을 가졌던 철학의 흐름이 단절된 이후, 1950년대 우리 철학계는 황무지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구주의적이며 실용주의적인 미국적 윤리학이 소개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사상계」의 창간 이래로 ‘인간의 자유의 근원적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실존철학과 독일 낭만주의철학을 중심으로 단속적이나마 계속 이루어졌다. 전자가 서구적인 근대화를 위한 정신적 발판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후자는 전후(愛) 황폐한 정신적 상황에서 출구를 찾으려는 지식인의 몸부림의 표출이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전자는 결국 예속적인 서구화를 추구하였던 당시 지배층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끝나버렸으며, 후자는 비록 4-19를 일으킨 정신적 토양과 무관하지는 않더라도, 결국 현실에 대한 비과학적 분석으로 인해 한국민족사에서 유례없는 변혁의 계기를 무산시키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1960년대에 들어와서 철학계는 일종의 학회라는 형식으로 결집되기 시작했다. 1963년 ‘한국 칸트학회’ 로부터 발전한 ‘한국철학연구회’ (1965년 창립)와 마찬가지로 1963년 ‘박종홍 환력 기념문발간회’를 시초로 하여 결집된 ‘철학연구회’가 있었고 또 비록 1950년대에 이미 출발하였지만 그간 활동을 중단하고 있던 ‘한국철학회’ 역시 1969년에는 재출발하게 된다. 이런 철학자들의 결집은 비록 학회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단순히 친목 이상의 활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교적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출발한 것이 1958년에 세워진 ‘한국사상연구회’라고 할 것이다. 이는 주로 서구 수입 철학 일색의 한국철학계에서 전통사상의 의미를 다시 찾으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발간된 한국사상의 “서문”에는 8-15는 몸의 해방을 가져다주었지만, 넋의 해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정신의 기둥을 상실한 한국민족은 그동안 남의 생각에 혼을 빼앗 겼으며 급기야 6-25라는 민족비극을 연출하게 되었다”는 자기반성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뚜렷한 민족의식으로부터 출발하기는 하였으나, 전통사상에 대한 관심은 주로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거나, 우리에게서도 서구적 사상의 단초를 찾을 수 있지않느냐는 소박한 생각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그간의 실존적 철학이나 실용주의적 윤리학이나 전통사상에 대한 철학적 노력은 유신시대를 맞이하여 유신철학으로 둔갑하게 되었다. 현실에 대해서는 예속적인 서구화를 그대로 용인하였다. 정신적으로는 실존적 비극이나 전통적 사상에서 숨쉬는 묘한 삼박자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그간의 철학적인 노력의 결과였으며, 무의식이지만 자연적인 추세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와서 우리의 철학계에는 새로운 풍조가 나타났다. 그것은 말하자면 본격 아카데미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상호 활발한 토론과 비판을 통해서 다양한 철학분야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내적으로는 좀더 근원적인 반성과 좀더 엄밀한 논의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이런 풍조가 나타나게 된 것은 비단 그동안 철학적인 연구성과가 축적되었고, 인적인 자원도 상당할 정도로 확보되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서구의 것, 남의 철학을 답습한다기보다는 스스로 철학적인 생산을 하려한 의식의 소산이라고도 하겠다. 특히 이런 경향을 촉구시킨 것은 아무무래도 1970년대부터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던 언어분석적, 문헌원학적 방법의 영향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이런 방법들은 언어제적 명확성과 형식적 치밀밀성 그리고 문제 자체의 시원적 출발점에 대한 고려를 다른 여타 철학에 요구함으로써, 애매하고 막연하게 자기 주장에 골몰하는 기존 철학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고 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아카데미즘적 풍조는 때로는 스콜라적 풍조로 변하기도 하였다. 그 문제의식에서나 관심영역에서, 또 그것을 다루는 철학적인 방법이나 도구에서 여전히 남의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을 뿐이며, 여기에서는 한국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심이나 방법론적으로 전통시대나 서구와는 다른 독특성이나 복잡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약간의 형식적 치밀성이나 약간의 근원적 반성을 얻었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은 일종의의 장식적 효과에 그치고 말았다.

물론 이것이 1970년대 철학의 전부는 아니다. 1960년대부터 계속되어온 전통사상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 전통사상의 방법론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에 ‘한국철학회’를 비롯한 여러 학회를 중심으로 방법론적 반성에 대한 세미나가 수차에 걸쳐서 개최되었다. 그리하여 여전히 전통적 방법과 서구적 방법이라는 이원적 대비 이상을 돌파하지 못하였으나, 적어도 지금까지 인정되어왔던 서구적인 방법만이 철학에서 유일하고 가치있는 것은 아니라는 자각을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 예속적인 서구화를 통해서 더욱 참담하게 된 한국의 사회현실에 대한 관심이 비판철학에 대한 소개나 정의론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판철학이 서구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철학이며 대단히 유토피아적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롤스를 중심으로 하는 정의론이 결국은 현실의 본질적 핵심을 은폐시킨다는 점에서 이런 종류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한국현실의 문제와 접맥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현실의 문제와 일정한 연관을 가진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는 하였다. 어떻게 보면 1970년대에도 소위 실용주의 실존주의 전통사상의 삼박자가 형태를 바꾸어서, 아마도 좀더 세련된 형식으로, 재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상과 같이 해방 이후의 짧은 역사나마 간추려보았을 때, 각각의 시대마다 주도적인 철학적 관심이 제기되기는 하였으나, 과연 그 관심과 문제들이 우리 현실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와 얼마 만큼이나 관련되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외세에 의한 민족의 분단과 민중의 참담한 생존조건과 철저한 권리의 박탈 앞에서 과연 이런 문제들은 어떤 의미을 가지는 것인가? 대개의 문제는 의식적으로 현실사회에 대하여 관심을 지니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제시되었다기보다는, 막연한 시대적 관심을 쫓아서 제기되었던 것에 불과하였다. 그 결과 한국 현실사회에 대한 피상적인 문제제기에 그쳤으며 결국은 지배자의 의도를 암묵적으로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현실사회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와 철학적인 고투를 거듭하였을런지 모르나, 이것이 집단적이고 명백하게 표명된 경우가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한 마디로 우리의 철학계는 철학적인 자기의식이 결여되었다고 할 것이다. 설혹 그간의 철학이 현실사회와 약간의 연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태도는 너무나 안일하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주로 외국의 이론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여기서 한국 현실사회의 복잡하고 고유한 성격에 대한 관심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만큼, 이는 결국 한국사회에 대한 파악에서의 안일한 태도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물론 전통사상에 대한 관심이나 그 방법론에 대한 반성이 1960년대 이후 계속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대비를 넘어서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서구이론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구조적으로 오랜 식민지 지배에 익숙한 결과, 노예의식이 철학적으로 몸에 배인 것 때문이라 하겠다.

— 하   략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시대와 철학」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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