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군의 전개과정

  1948년 6월 18일 제주도 주둔 제11연대 연대장 박진경 대령의 암살사건은 숙군의 단초가 되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국방경비대에서는 전군 차원의 사상검열을 실시했다. 1948년 8월 16일자 주한미임시군사고문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고되었다. “이번 주 동안에 전복행위의 혐의가 있는 국방경...

제6연대 2차 반란사건

  제1차 사건을 계기로 연대본부와 제2, 제3대대는 숙군이 진행되었지만 지리산지구에 출동중인 연대 하사관교육대와 제1대대의 2개 중대에는 아직 숙군 작업이 미치지 못했다. 이에 숙군당국(肅軍當局)에서는 토벌부대도 일단 복귀시켜 조사를 실시하고자 지리산지구의 제3연대 제3대대 병력으로 제...

제6연대 1차 반란사건

  대구 주둔 제6연대는 창설이래 5명의 연대장 가운데 김종석, 최남근 등 2명이 좌익 관련 장교였으며, 사병들 또한 소위 ‘대구폭동사건(1946. 10. 1)’의 관련자들이 대거 도피처로 삼아 입대함으로써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제6연대는 1948년 7월 10일 1개 대대가 제주도 토벌부대로 출동하였고, 8월 ...

여순 10·19 사건 – 국군의 호남·지리산지구 토벌작전

  1948년 10월 27일 진압군이 여수를 탈환함으로써 사건 9일만에 반란은 일단 진압되었지만 상당수의 반란군 잔여병력이 지리산 일대로 도주하여 게릴라 활동을 위한 근거지를 형성하였다. 이에 육군총사령부는 10월 30일 여수에 있던 반란군 토벌사령부 예하의 작전부대를 주축으로 하여 호남방면전투...

여순 10·19 사건 – 국군의 여·순지구 탈환작전

  제14연대의 반란 소식이 육군총사령부에 전달된 것은 20일 01 : 00가 넘어서였다. 철도경찰대의 경비 전화망을 통해 올라온 반란의 급보를 접한 이범석 국방장관은 09 : 00에 국방부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참석자는 이범석 장관을 비롯해 채병덕 참모총장, 정일권 참모부장, 백선엽(白善燁) 정...

여순 10·19 사건 – 사건의 발생

  제14연대는 1948년 5월 4일 여수에서 창설되었다. 창설 요원으로는 당시 광주에 주둔하던 제4연대의 1개 대대가 차출되었으며, 초대 연대장은 제4연대 제1대대장이던 이영순(李永純) 소령이었다. 연대 주둔지는 일제 말 일본해군항공기지가 있었던 여수 신월리였다. 제14연대 창설요원으로 차출된 1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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