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겨울은 다가왔고, 혹한기훈련의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에는 아무것도 없이 전입(?)온 지 1주일 만에 훈련에 참가해서
지식도, 체력도 한참 부족한 채였지만,

올해는 다르다.

1년동안 수색대대 저격반장으로써
내게 허락된 시간동안 공부하고 연습하고 훈련했었기에
작년보다는 훈련에 자신이 있었다.

변수는, 개인화기가 2개라는 것과, 아직은 믿을 수 없는 나의 체력 그리고 과체중.
어떻게 이겨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정도이었을까?

이렇게 시작된 혹한기 훈련에서의
나의 첫 번째 개인임무는 대항군 묘사를 하는 부대원들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상황을 조성하고 훈련부대와의 조우전 및 도주. 이 과정을 옆에서 촬여하는 것이었다.

상황을 조성하고 대항군들은 은거, 촬영담당인 나는 근처에서 훈련부대를 기다리고 있는데

훈련부대는 찾으라는 대항군은 못찾고, 애꿎은 나를 대항군으로 인식했다.
분명히 머리에 빨간띠 두르고 있다고 전파했었던것 같은데…

그래서 촬영담당에서 대항군으로 임무가 변경되었다.
그렇게 진행된 임무는 경찰에 인계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두 번째 임무는 차량 테러범.
하지만 변경되어 부대 내 훈련과제를 수행했다.

이렇게 하루가 다 끝나고, 숙영을 실시했다.

둘째 날 부터는 단기 요원들이 입소해서 함께 부대 훈련과제를 실시했다.
그래도 같이 모여 있으니까 편하고 나도 힘이 좀 났지만,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도 있어서
은근히 피곤했다.

이날 야간에, 화력유도 교육을 했는데,
실패했다. 너무 어려운 내용에 심도깊은 내용까지 준비했지만
듣는 이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다.

셋째날, 부대 내에서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듯 하다.
상비예비군으로만 구성된 대항군.
심지어 마일즈 장비와 공포탄 까지 지급된 자율교전식 훈련과제였다.

시작부터 걱정이 많았는데, 결국 모든 상황이 끝나고 이벤트가 발생했다.
탄피 종합을 했는데 두 발이 없어진 것이다.
으아… 진짜 순간 암담해졌다.

그런데, 진짜 하늘이 우리를 도우셨는지,
탐색을 포기하고 통제부에 보고하려는 찰나에
그 낙옆투성이 산등성이에서 잃어버린 탄피를 모두 찾아낸 것이다.

꽤 시간이 기났지만, 이건 정말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말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모든 신께 감사드린다.

오후에는 단기분들을 모시고 다른 부대의 훈련과제를 참관해서
과제에 대한 학습과 궁금한 점 등을 질의하면서 보냈다.

야간에는 상비예비군 제대 교육을 맡게 되었고
신형 장비교육과 더불어
도시지역작전, 건물 진입에 대한 SUT를 진행했다.
상비예비군들의 평가는
‘이제껏 했던 상비예비군 훈련 중에 이번 훈련이 제일 재미있고 의미있었다, 수색대대 와서 수색다운 훈련을 드디어 했다.’
였다.

이렇게 대만족을 하고
단기 요원분들은 모두 퇴근하셔서 다시 혼자가 되었다.

넷째 날은, 지휘관으로부터 별도의 임무를 받았다.
새로운 장비에 대한 실제적인 능력검증 이었다.
처음에 제작업체가 와서 교육할 때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그것도 됩니다’
라고 교육을 했었고, 검증할 시간이 촉박해서

업체를 믿고, 들은 대로 장비 브리핑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을 두고 기능에 대해 하나씩 검증을 했더니

‘이 기능은 대응 장비가 구형일 때 가능하고 신형일때는 별도의 조작을 해야 합니다.’
‘저 기능은 우리가 관여한게 아니라 다른 업체 연구소에게 문의해야 합니다’
‘그 기능은 아직 구현할 부품이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나는 기술영업에 당한 것이다.

회사원을 그만하게 된 지 벌써 5년째,
군인들하고 너무 가까워졌더니 나이 먹고 순진해져서
뻔한 레파토리에 속은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평판을 깎아먹더라도 밝혀진 스펙과 기능제한에 대해 보고해야 겠다’
라고 각오하고 바로 보고드렸다.

당연히 엄청나게 실망한 태도로 나를 대하는 지휘관.
더불어 나의 평판도 바닥에 수렴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부대를 먼저 살려야, 나중에 내가 사는 기회도 한 번은 올 거다 라는
오랫만에 다짐잡는 회사원의 마음으로
지휘관의 눈빛과 태도를 견뎌냈다.

이 여파는 저녁에도 이어졌다.

행군만 남은 상황에서 잠시동안의 부대원 전체가 참여하는 강평시간이 있었는데,
나의 평가는 혹한기 훈련에 대한 부분은 하나도 없고,
장비 기능 검증에 대한 결과를 정정보고 한 부분만 평가하셨다.

‘본인이 한 보고를 뒤집어서 다시 보고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 내어 보고해줘서 좋았다.’

라고는 하셨지만,
모두가 한 마디씩 하는 순서에서는 나는 제외되었다.

회의시간에 모두의 발언중에 나만 발언하지 못하게 막았다?
이게 만약 사기업이었다면, 대놓고 내리는 냉정함이고, 굴욕감을 가슴에 떠다 얹어주는 것이다.
나를 마주보던 이들의 눈이 나와 지휘관을 교대로 보고 있었다.

나도 발언하고 싶다고 손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휘관의 지금의 나의 대한 정성평가와
내가 내놓은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한 스스로의 의기소침함 때문에
끝내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전술훈련의 마지막 밤은
생각보다 불편한 마음과 의기소침함, 반성과
재기에 대한 고민으로
깊게 잠들진 못했었던 같다.

이제 행군날 아침.
우리가 전체 제대의 선두 제대였다.

대휴식 장소까지는 선두제대의 후미에서
다음제대와의 거리 유지를 하며 행군에 임했다.

대휴식 이후에는
전체 제대대의 첨병 임무를 수행해서
길잡이가 되었다.

어느덧, 이 행군로를 5년째 걷고 있는 오래된(경험많은) 상비예비군이 되어있었다.

행군까지 끝내고 나니,
아 이제 혹한기 훈련이 끝났구나 하는 실감이 몰려 왔다.

부대 자체적으로는 성공적인 마무리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참한 결과를 냈던 훈련이어서

복잡다난한 마음으로 훈련을 마치고 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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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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