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여단에서 나를 ’25년 모범예비군’에 추천해주셨다.

공적조서를 작성하고 나니, 기대가 되었다.
나의 3년을 정리하다 보니 참 많은 일을 했었다.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이렇게까지 임무수행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판이 시작되니 꼭 인정받고 싶어졌다.

크게 기대하면, 크게 실망하는 법이라, 일단 잊기로 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연락을 받았다. 육군에서 선발되었고, 국방부 최종만 남았다는.
아, 그래? 잊고 있었던 기대감이 다시 차올랐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라 되니이면서 임무수행에 집중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다가 연말 결산 회의때 사단에서 내려온 화지장교님께서
내가 국방부장관 표창 최종 대상자에 선발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엄청 기뻤는데,
말로만 전해 들었지 확인할 수 있는 서류 하나 없었기에 조심하면서 얘기 안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꽤 많은 수의 장기상비예비군이 모인 자리에서
먼저 얘기해 버려서 어쩔 수 없이 공개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지나다가 지난 2월부터 서서히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의 연락이 오고가던 중에 표창 수상 전날이 되었다.

표창 수상 후 제주도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가족이 같이 짐을 꾸려서 이동했다.

행사 전날,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서
수장, 표창장, 기념품 등을 지급받았다.

첫날 숙박장소는 밀리토피아 호텔.
4월 초의 밤이었지만 실내 온도는 31도까지 치솟았다.

가족들은 더워서 잠을 자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프론트에 전화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중앙컨트롤 냉난방 방식이라, 현재는 냉방을 가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필요하시면 선풍기를 대여해 드리겠습니다.’

첫 날. 4성급 호텔에서. 냉방이 되지 않아 선풍기를 틀고 잠을 청했다.

행사 당일.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면서, 와이프에와 약간의 설전이 있었다.

08시 30분까지 버스정류장으로 오라는 건,
08시 30분까지만 내려가면 되는거 아니냐… 라는 질문에 나의 답은 이랬다.

08시 30분까지 버스정류장으로 오라는건,
08시 30분까지 전원 개인 짐 다 버스에 싣고 자리에 앉아 출발할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다.
라고.

와이프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바로 군대 스타일라고 말해줬다.

행사장.

이미 정해진 자리에는 우리 가족의 이름표가 놓여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분들과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다 보니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행사가 진행되었고, 제주도로 안보견학을 떠나게 되었다.

장기상비예비군을 시작하고 3년동안 이 임무를 수행하는 나를 응원해주는 가족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내가 열심해 했고, 인정받았으니, 여한이 없었다.
상비예비군 포병대 전사관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증명한 것에 대한 포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왜 저렇게 생각하냐면,
이 표장에 대한 에필로그가 남아있었다.

표창을 받고 한 달 즈음 지났을까?
이 표창에 대해서 잠시 얘기가 나왔는데
한 장교분께서
‘처음엔 내가 받는 거였는데, 나는 다음에 올려도 받을 수 있어서 양보한거다.’
라고 몇몇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내게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래서
내 능력과 성과로 표창을 받은 것이 아니라,
원래 대상자였던 장교가 포기해서 부사관이 받을 수 있었구나. 라는 또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양보해서 받은 표창이긴 하지만
양보받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만큼 성과를 올렸다는 스스로의 위로를 끝으로,
모범예비군 표창의 이번트는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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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기 비상근예비군 1기. 이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다시 한 번 군에 투신한, 두번째 복무를 불태우는 중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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