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체제의 핵심은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한 고정환율제도였다. 각국은 자국 통화의 가치를 미국 달러에 대해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했고, 미국은 달러를 일정한 가격의 금으로 교환해 주기로 약속했다. 당시 미국은 금 1트로이온스당 35달러의 공식 가격을 유지했다. 따라서 다른 국가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되고, 달러는 금에 연결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를 흔히 금·달러 본위제(Gold-Dollar Standard)라고 부른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각국은 자국 통화의 기준환율을 정하고, 환율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다만 경제의 근본적인 불균형이 발생한 경우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의를 거쳐 환율을 조정할 수 있었다. 즉, 완전히 고정된 환율이라기보다는 필요할 때 조정할 수 있는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도(Adjustable Peg System)였다.
이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두 개의 주요 국제금융기구가 설립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은 국제수지 불균형을 겪는 국가에 단기적인 금융 지원을 제공하고 환율 및 국제통화 협력을 담당했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은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의 복구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IBRD는 이후 세계은행(World Bank) 그룹의 핵심 기관이 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전후 세계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환율 변동 위험이 줄어들면서 국제무역과 투자가 확대되었고, IMF와 세계은행을 중심으로 국제금융 협력의 기반도 마련되었다. 특히 미국은 전쟁 이후 세계 최대의 경제력과 금 보유량을 바탕으로 국제통화질서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세계경제에 충분한 달러를 공급하면서도 달러의 금 교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야 했다. 세계경제가 성장하면서 국제무역과 금융거래에 필요한 달러 수요는 증가했지만, 미국의 금 보유량은 무한하지 않았다. 미국이 해외에 달러를 많이 공급할수록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달라는 요구가 커져, 달러의 금 태환 약속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국제경제학에서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와 인플레이션, 달러에 대한 신뢰 하락이 심화되었다. 1971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달러의 금 태환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닉슨 쇼크(Nixon Shock)라고 불린다. 이후 환율 변동이 확대되었고, 주요국들은 점차 변동환율제로 이동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70년대 초반 사실상 붕괴했으며, 1976년 자메이카 협정 등을 통해 금과 환율에 관한 새로운 국제통화질서가 정리되었다.
결국 브레튼우즈 체제는 달러를 중심으로 환율 안정과 국제금융 협력을 추구했던 전후 국제통화제도다. 이 체제는 세계경제의 회복과 국제무역 확대에 기여했지만, 세계의 준비통화인 달러를 공급해야 하는 미국의 역할과 달러의 금 태환 약속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오늘날 국제금융질서를 이해할 때도 브레튼우즈 체제는 달러 중심 체제의 형성과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의 전환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