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 능동성을 부인하는 성리학의 일파
主氣論
주기론主氣論을 글자 그대로 출면 ‘기氣를 위주로 하여 이기론理氣論을 펼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기론을 일종의 기학氣學이나 기철학氣哲學으로까지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기론이란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다. 주기론은 다음의 입장을 근거로 이기론을 펼친다.
“이理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주리론主理論은 이理가 움직일 수 있다고 인정한다. 주기론은 주리론은 이理의 능동성 여부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라진다. 이 사소한 입장 차이가 커다란 철학적 쟁점을 만들어냈고, 현실 속에서도 크나큰 정치적 대립을 낳게 된다.
이기론 구도는 주희朱熹가 창안해냈다. 주희는 주돈이周敦頤가 강조한 태극太極 개념을 받아들여 이理로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태극이 가지고 있는 기氣의 요소들을 제거해 버렸다. 또한 주희는 장재張載가 강조한 기氣 개념에서 태허太虛로서의 원리적 측면을 제거해버렸다. 즉 원리적 측면과 물질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던 기존의 태극 개념과 기 개념을 완전히 분리해서 원리적 측면은 이理에 배속시키고, 물직적 · 에너지적 측면은 기氣에 배속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로써 주동이가 말했던 태극과 음양오행이라는 애매한 개념 및 장재가 말했던 태허와 기라는 불명확한 개념들은 이기론이라는 새로운 구도 속으로 해체 모이게 되었다. 이理는 시원적 원리이면서 현실을 규율하는 명령이다. 기氣는 물질이면서 에너지로서 온우주의 과학적 · 윤리적 측면을 설명해주는 수단이다. 이理와 기氣는 개념적으로 완전히 구분된다.
그러나 주희가 제시한 새로운 이기론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이기론의 불완전성은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불리부잡不離不雜, 즉 “서로 떼어져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서로 뒤섞여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셜명한 주희의 애매한 입장에서 확인된다. 이理와 기氣는 개념적으로는 분명히 구분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늘 함께 한다. 원리 없는 물질 · 에너지란 있을 수 없고, 물질 · 에너지가 없다면 원리가 있을 수도 없다. 명백히 구분되면서도 늘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특성으로 인해 이기론은 수많은 쟁점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쟁점들은 기氣가 가진 윤리적 측면 때문에 발생한다. 기氣가 순전히 과학적 대상의 역할만 했다면 애초에 쟁점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理와 기氣는 정확히 과학적 법칙과 물질의 개념에 대응되었을 것이다.
성리학자들은 기氣를 윤리적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맑고 깨끗한 기氣를 선善한 기라 간주하고, 탁하고 더러운 기氣를 악惡한 기라 간주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어떻게 완전무결한 과학적 · 도덕적 원리인 이理와 달리 기氣는 이처럼 청탁수박淸濁粹駁의 정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주기론자들은 이에 대해 일관되게 답한다.
“기氣의 윤리적 차이는 오로지 기氣 자체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설명은 주희의 원래 구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이理는 원리일 뿐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오로지 기氣로 설명될 뿐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기氣가 맑은지 탁한지, 깨끗한지 더러운지 여부는 기氣만 보면 파악할 수 있다. 현실의 기氣를 원리로서의 이理에 대조해보아 차이가 크면 악한 기氣가 되는 것이고, 차이가 적을수록 선한 기氣가 되는 것이다. 선악의 기원은 기氣에 있다. 이理는 선악의 판단 기준이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러한 입장은 이이李珥를 비롯한 조선의 기호학파畿湖學派가 주로 취했다. 그들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 보게 되는 선한 행동의 근원을 기氣에서 찾는다. 이理는 아무런 적극적 역할도 하지 않는다. 단지 선한 행동의 지남철 역할만을 할 뿐이다.
가령 누군가 법에 따라 양심적으로 행동했다고 하자. 이때 법은 그 선한 행동에 아무런 직접적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법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현실 속의 인간이 그 법을 좇아 성실히 행동했기 때문에 선한 행동이라는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주기론은 이론적으로 주리론보다 더 정확하다. 주희도 여러 차례 이理가 결코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무언가 움직임이 있고 명령하는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기氣인 것이지 이理일 수는 없다.
그러나 주기론에는 크나큰 맹점이 있다. 이理가 우리의 삶에 아무런 적극적 역할도 하지 못하고 단지 법률처럼 원칙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로 하여금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원천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법이 있어도 법망을 피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원리가 있어도 원리의 눈을 피해 교묘히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들을 무순 수로 규율할 수 있겠느냐고 주리론자들은 반박한다.
주기파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주기파의 세력 근거인 기호畿湖지방은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간을 여당의 지위로 보냈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러 성리학이 외부로부터 뿌리째 도전받는 상황이 닥치자 그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정권의 핵심세력이었던 기호지방의 주기론자들은 변화하는 현실을 설명할 방도도 없었고, 이理의 능동성에 의지해 현실을 변화시킬 이론적 토대도 없었다. 결국 그들이 택한 것은 은둔이었다.
변화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웎던 집권자들은 논외로 치자. 그런 부류는 논해 봤자 입만 더러워지니까.
한편 이런 변화된 현실까지도 인정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기론자들도 있었다. 홍대용과 최한기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이理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변화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주기론적 입장에서 출발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기론이라는 이기론적 틀 자체의 한계를 벗어나려 했다는 점에서 주기좌파라 규정된다. 반면 앞서 면한 은둔형 주기론자들은 이기론적 틀을 고수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기우파라 규정된다.
주기좌파 가운데 대욱 래디칼한 입장을 보였던 건 최한기이다. 그는 이理 자체를 완전히 격하시켜 물리적 원리의 의미로 끌어내렸다. 명령은 커녕 어떠한 도덕적 원리로서의 의미도 없는 것으로 재규정했다. 이에 따라 과학이 발달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새로 갖춰지게 되었다. 주기좌파는 주리좌파와 함께 실학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게 된다.
채석용, 『철학 개념어 사전』, 소울메이트(2010), 359-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