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우주로부터 부여받은 선한 본성의 네 가지 측면
四德
사덕四德, 즉 네 가지 덕목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하나는 우주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것이다. 우주적 측면에서의 사덕이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며, 인간적 측면의 사덕이란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원형이정은 『주역周易』에 나온다. 고대 중국인들의 우주관이 이 한마디에 응집되어 있다. 인의예지는 맹자가 한 말이다. 맹자는 인간의 선한 본성이 구체적으로 이들 네 가지 덕복으로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원元은 으뜸이란 뜻으로 만물의 최고 덕목을 가리킨다. 인간의 덕복인 인仁과 짝지어진다. 형亨은 형통하다는 뜻으로 만물이 질서정연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킨다. 인간의 덕목인 예禮와 짝지어진다. 예를 통해 질서를 갖추게 된 사회의 모습을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과 유비類比시킨 결과이다. 이利란 이롭다는 뜻으로 만물이 올바른 길을 찾아 운행되어 이로운 결과를 낳음을 가리킨다. 인간의 덕복인 의義와 짝지어진다. 정貞은 곧다는 뜻으로 만물의 근간이 곧아야 함을 가리킨다. 인간의 덕목인 지智와 짝지어진다. 지혜를 통해 곧은 근본을 파악할 수 있음을 유비한 결과이다.
사덕의 두 가지 측면 가운데 원형이정은 주로 도가 계열의 신비주의자들이 자주 거론했던 반면, 인의예지는 성리학자들의 핵심 키워드 역할을 하게 된다. 도가 사상가들의 관심은 우주로 나아가고 성리학자들의 관심은 인간으로 향한다. 물론 성리학자들도 원형이정을 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윤리적 삶에 있었기 때문에 인의예지에 대한 부가 설명 정도의 차원에서 원형이정을 논했다.
성리학자들의 관심을 인간이 인의예지라는 사덕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을 어떻게 우주적인 측면에서 정당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사덕이 우주적 차원의 사덕과 원칙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즉 인간의 윤리적 덕목들은 우주가 보장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인간과 우주를 하나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과연 우주에도 인의예지가 있는가?
성리학자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이론상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거 온갖 동물들과 무생물들도 전부 윤리적 층위에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에 이어 동물이 그 다음으로 인의예지를 많이 갖춘 생명체이다. 식물에게는 인의예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무생물에게는 인의예지가 거의 없다.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모습을 의義의 발로라고 보아 호랑이에겐 부분적으로 의義의 덕목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먹이를 바위 위에 나열해 놓는 수달의 행위를 제사 지내는 것이라 보고 수달에게는 예禮의 덕목이 갖춰져 있다고 본다. 심지어 붓두껍에게도 인의예지가 있는지 안ㄹ고 싶어 며칠씩 붓두껍의 인의예지를 관찰하려다 몸져누은 경우도 있다.
이처럼 성리학자들은 만물을 죄다 인의예지라는 기준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다수의 성리학자들은 자연 감상을 즐겼다. 깊은 산골에 틀어박혀 인의예지의 위계를 논하면서도 그 위계상 가장 하위에 있는 식물들과 강산을 음미하면서 즐겼다. 어떻게 이런 모순된 행동이 가능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사덕이라는 인간의 본성은 감정으로 표출되는데 그런 인간의 감정은 정情이라 한다. 정은 때로는 사단四端으로 구분되기도 하며, 때로는 칠정七情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사단이 순선무악純善無惡한 것인 반면 칠정은 선악이 혼재된 것이다. 사덕이 정情으로 표출되는 과정은 숱한 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근대를 거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은 완전히 단절되어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현대에 와서 사덕은 유전학에 의해 재발견된다. 인仁, 즉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은 유전자 정보에 선천적으로 담겨 있다. 이런 능력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우월하다. 유치원생 아이들 가운데 여자 아이들은 선생님이 아파하면 따라 울지만 남자 아이들은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자기 일 하기에만 급급하다.
의義, 즉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또한 유전자 정보에 담겨 있다. 집단의 번영을 위해 침입자를 공격하는 벌이나 개미처럼 인간에게 도 인간 집단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의로운 유전자 정보가 있다.
예禮, 즉 위계적 질서를 지향하는 경향 또한 선천적이다. 동물원에만 가도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모든 동물들은 위계적 질서를 갖추고 있고, 인간 또한 본능적으로 그런 질서를 추구한다.
지智, 즉 지식을 쌓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선천적이다. 두뇌에는 이런 유전자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언어능력과 논리력 등이 모두 유전자 정보에 의해 해석될 수 있다.
사덕 가운데 원형이정은 이미 수명이 다했다. 사덕 가운데 인의예지는 과학적 성과에 힘입어 그 창의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인의예지는 이제 철학적 주제가 아니라 과학적 주체가 되어버렸다. 좋든 싫든 그게 현실이다.
채석용, 『철학 개념어 사전』, 소울메이트(2010), 164-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