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중국문제는 아시아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미국은 극동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하여 중국을 세계 4대강국의 위치로 끌어올려 전후 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중국문제는 아시아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미국은 극동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하여 중국을 세계 4대강국의 위치로 끌어올려 전후 아시아의 세력균형을…
① 북한군 증강 지원 소련군의 철수발표 직후 북한의 김일성, 박헌영 일행은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 그의 소련행은 명목상 북한 경제지원과 군사지원문제로 논의한다고 하였지만 주목적은 무력통일론에 대한…
한반도에 출현한 38도선은 한민족을 가르는 남북의 분단선인 동시에 동북아시아에서 양대 진영의 분단선이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의 한반도 문제를 구체화하려는 제1⋅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소련의 제25군사령관 치스챠코프는 1945년 8월 24일 함흥으로 들어가면서 조선인민에게 낸 포고문에서 “당신들 수중에 행복이 있다”고 해방을 선언하면서도, 38선 분할에 관하여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해방 직후부터 미⋅소 공동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결렬되기 이전까지 소련은 한반도내 “소련에 우호적인 정부를 구성한다”는 기본목표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소련은 해방직후 북한에서 소위 ‘사회주의 구축(構築)’이라는…
소련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는 히틀러의 침공 8개월 후인 1942년 2월 23일 스탈린 지시 55호를 통하여 제창한 바 있는 ‘항상적(恒常的) 작전요인’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평시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군사력 감축은 병력과 장비의 감축만으로 완료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전후 소련 당국은 결과적으로 2차에 걸쳐 군 지휘부를…
제2차 세계대전 후 살얼음판을 걷듯 신중하던 미⋅소의 관계가 1948년 말을 고비로 급격히 냉각되었다. 냉전이 표면화되면서 소련의 대외(對外)정책도 1920년대로 회귀했다. 소련 내에서 소위 “적에게 포위된…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대대적인 군비감축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종전 직후 소련은 군비 감축의 일환으로 1945년 5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전쟁 그 자체의 종결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국제세력 판도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소련의 세력지배 하에 있던 동독, 폴란드(Poland), 헝가리(Hungary), 루마니아(Rumania), 불가리아(Bulgaria), 유고슬라비아(Yugoslav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