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ing: 국방/외교

동원체제 해제와 군사력 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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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신속히 단행되었던 동원해제와 국방비의 대폭 감축은 결과적으로 1949년 주한미군의 철수를 불러왔고, 이는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 김일성(金日成)으로 하여금 6⋅25전쟁을 일으키게…

공산정권의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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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여름에 이르러 신탁통치를 거쳐 한반도에 단일 국가를 건설한다는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이 실현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자 소련 정부는 38도선 이북에 공산주의자를 내세운 단독…

김일성의 등장과 인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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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북한에서 군정을 시작할 때 각 지방 소재 소련군정 대표들은 위수사령관들이었으나 이들 대다수는 순수한 군인들이었기 때문에 경험이나 준비 상태의 측면에서 정치․경제 문제의 처리에…

초기 공산주의 세력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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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항복하고 소련군이 진주할 때 북한지역에서는 다수의 자치단체들이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었다.(자위대, 보안대, 치안유지위원회, 건국준비위원회지부 등의 이름으로 결성된 단체들이었다.) 이들 단체들은 주로 광복 직후 권력…

정부수립 후 국내정세 — 경제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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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정기간의 경제는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산업생산력이 80%까지 감축되었다. 예컨대, 탄광은 실질적으로 휴면상태였으며, 어업은 해방 당시 일본인이 가져갈 수 있는 모든 선박과 어구를 가져갔으므로…

정부수립 후 국내정세 — 정치⋅사회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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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부는 신생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여 민주주의 발전, 민생안정, 경제건설 등과 남북통일의 과제가 부과되었다. 그러나 남한 내 좌익이 무장투쟁을 전개했고 북한이 38선 충돌을…

정부 수립과 유엔의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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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의견대립으로 2차에 걸친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남한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국내세력 가운데 선거참여를 거부한 중간세력이 배제되고, 이미 1946년 6월 통일정부가 여의치 않으면…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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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합작운동은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통일정부의 수립을 위해서 좌 우익의 편파적 노선을 극복하고 좌우합작이 필요하다는 여운형과 김규식의 논의와, 소련과 협상을 재개하고 남한에서 미국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정치세력의 분열과 정당 통합운동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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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핍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광복을 위해 투쟁하여 왔던 독립운동 세력들은 ‘중경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어느 단체도 연합국으로부터 승인을 얻지 못했고 효과적인 지원도 받지 못했다.…

광복 직후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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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왕이 목멘 소리로 연합군에 대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드디어 한국은 36년간 억압과 착취가 이루어졌던 식민지 상황에서 해방되었다. 이 날을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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