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학병동맹(朝鮮學兵同盟)은 1945년 9월 1일 조선학도특별지원병(朝鮮學徒特別支援兵) 출신의 귀환 장병들이 서울 종로 한청(韓靑) 빌딩에 모여 결성한 군사단체이다. 이들은 위원장 왕익권(王益權), 부위원장 이춘영(李春榮)을 지도부로 선임하였다. 조선학병동맹의 강령에는…
조선학병동맹(朝鮮學兵同盟)은 1945년 9월 1일 조선학도특별지원병(朝鮮學徒特別支援兵) 출신의 귀환 장병들이 서울 종로 한청(韓靑) 빌딩에 모여 결성한 군사단체이다. 이들은 위원장 왕익권(王益權), 부위원장 이춘영(李春榮)을 지도부로 선임하였다. 조선학병동맹의 강령에는…
조선임시군사위원회(朝鮮臨時軍事委員會)는 일본군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이응준, 김석원(金錫源), 신태영(申泰英), 백홍석(白洪錫), 이대영(李大永), 박승훈(朴勝薰), 김준원(金俊元), 유승렬(劉承烈), 안병범(安秉範) 등이 발족시킨 친목단체이다. 조선임시군사위원회는 위원장에 이응준, 부위원장에 김석원, 병기부대에 채병덕(蔡秉德), 주계부장(主計部長)에…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국내 및 해외에서 활동하다가 남한에 들어온 군사경력자들은 모두 13만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과거 군사경력과 연고관계를 중심으로 자생적(自生的)인 군사단체를 조직하여 미군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북한은 구체적인 침략방식을 내부 투쟁에서 무력침략으로 방향을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북한은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의 공포와 더불어…
북한 해군은 북한군이 창설된 후 일년이 지난 1949년 8월까지도 내무성 산하의 해안경비대로 존속하다가 1949년 8월 20일 민족보위성으로 관할이 이관되면서 북한군 해군으로 공식 발족하게 되었다.…
1945년 10월 하순 이후 각 보안대 창설과 함께 북한의 동서해 각 해안지대에는 북한 해군의 모체인 수상보안대가 조직되었다. 그 후 1946년 7월 원산에 수상보안대 사령부를…
해방 후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 제25군 예하에는 10기계화사단이 있었다. 이 사단은 평양 사동(寺洞)에 주둔하면서 북한군 기갑부대 창설의 모체 역할을 하였다. 1947년 5월경 소련군 제10기계화사단은…
북한은 1949년 초부터 북한군 확장과 국민 총동원을 위하여 군 징집제도를 자원입대에서 공개 강제징집으로 전환하여 보안대의 주관 아래 병력을 취합하였고, 모든 북한의 고급중학과 대학에 배속장교를…
1949년 4월 조․중(朝·中) 회담에 따라 중공군 제166사단(방호산 : 方虎山), 중공군 제164사단(金昌德) 그리고 중공군 독립 제15사단(全宇)과 중국 각지의 조선의용군(韓人義勇軍) 약 50,000명이 1949년 7월부터 1950년 5월까지…
북한은 먼저 전문적인 유격대를 양성하기 위해 제766보병연대를 창설하였다. 이 부대는 1949년 4월 함경북도 회령에 유격대원 전문양성 기관으로 통상 제766부대라 하며, 대외적으로는 제3군관학교라 했다. 부대장(학교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