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는 항복선언 직전에 패전 후의 치안문제와 정치범 석방, 일본인의 보호를 위하여 한국내 지도급 인사들과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그 접촉 대상 인물로는 중도 좌파 성향의 여운형(呂運亨),…
조선총독부는 항복선언 직전에 패전 후의 치안문제와 정치범 석방, 일본인의 보호를 위하여 한국내 지도급 인사들과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그 접촉 대상 인물로는 중도 좌파 성향의 여운형(呂運亨),…
영암 군경 충돌사건은 1947년 6월 3일 전남 영암에서 국방경비대 제4연대 제1대대와 영암 경찰간에 발생한 무력 충돌 사건이었다. 광주 주둔 제4연대는 창설 초기부터 대원들의 자질…
대전 주둔 제2연대의 공금횡령과 보급품 부정처분 사건은 남로당의 인민혁명군사건과 더불어 남로당의 군내 활동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연대장이 직접 관여한 이 사건은 광복군계와 일본군계의…
경비사관학교 생도대장 폭행사건은 1946년 12월 4일 밤에 생도대장이면서 경비사관학교 교장 대리를 겸하고 있던 이치업(李致業) 대위가 자신의 숙소에서 취침 중 사관후보생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해 의식불명에…
제1연대 제1대대 소요사건은 1946년 5월 23일 제1연대 제1대대 사병들이 연병장에 모여 데모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영등포 보급중대에서 차량 2대 분량의 보급품을 부정처분한…
광복 직후 좌익세력은 조선국군준비대(朝鮮國軍準備隊)와 조선학병동맹(朝鮮學兵同盟) 등을 통해 자체의 무력을 갖고자 하였다. 그러나 1945년 11월 13일 미군정청내에 국방사령부(國防司令部)가 설치되고 1946년 1월 15일 국방사령부 예하에 국방경비대(國防警備隊)가…
청년방위대(靑年防衛隊)는 1949년 8월 6일 병역법이 법률 제49호로 공포되고, 이에 따라 동년 8월 31일 호국군이 해체되자 당시 긴박한 국내정세에 비추어 민병 20만명의 편성을 역설한 이승만…
호국군(護國軍)은 주한미군의 철수에 대비하기 위해 1948년 11월 30일 창설되었다가 1949년 8월 31일 해체된 예비군(豫備軍)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주한미군 철수가 미국의 정책으로 결정되자 이범석 국방장관은…
해병대 창설 시도는 1948년 10월 19일 여순지역에서 발생한 반란사건에 출동했던 해군 임시정대의 실전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여․순작전에 참가했던 이상규 소령은 손원일 해군총참모장에게 보고한 작전결과보고서에서 육전대(陸戰隊)의 필요성을…
공군의 독립이 이루어지면서 예하 부대의 개편도 이루어졌다. 이미 설치된 육군항공사관학교는 공군사관학교(空軍士官學校)로, 육군항공비행부대는 공군비행단(飛行團)으로, 육군항공기지부대는 항공기지사령부(航空基地司令部)로 개칭되었고, 여자항공교육대는 여자항공대(女子航空隊)로 개편되었다. 육군항공사령부의 의무처는 공군병원으로 개칭되었으며, 육군항공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