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 능동성을 긍정하는 성리학의 일파
主理論
주리론主理論을 글자 그대로 풀면 ‘이理를 위주로 하여 이기론理氣論을 편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리론과 대립각을 세웠던 주기론主氣論로 이理의 절대성으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모든 삶이 이理라는 영원불변의 표준을 근거로 해야 한ㄷ고 보았던 점에서 주리론과 주기론은 공통적이다. 주리론이 주기론과 차이점을 보이는 측면은 아래 구절로 요약할 수 있다.
“이理는 능동적으로 우리의 삶을 규율하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주기론은 이理의 절대성을 인정하면서도 결단코 이理가 능동적으로 우리의 삶을 규율하고 명령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이理가 될 수 없다. 있는 것, 형체가 있고 냄새가 있는 일체의 유형의 것은 기氣일 뿐 이理가 아니다. 이理는 마치 법률처럼 아무런 능동적 행위도 하지 않을 채 원리로서만 존재할 뿐이며 현실은 기氣를 통해서만 움직인다.
그러나 주기론은 이론적 엄밀함을 확보하는 대신 윤리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는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언가 윽박지르고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존재가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 무엇 때문에 선한 일을 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게 되는지 주기론으로는 적절히 설명할 수 없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 합격하자!”는 푯말을 책상머리에 붙이고 자율적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주기론자의 입장인 반면 늘 곁에서 회초리를 들고 무섭게 노려보는 어머니가 계셔야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주리론자의 입장이다. 이를테면 주리론이 말하는 이理란 드라마 〈공부의 신〉에 나오는 강석호 샌생처럼 다그치고 타이르는 존재이다.
주기론이 철학적이고 이론적이라면, 주리론은 윤리학적이며 신학적이다. 주리론은 악이 기氣에서 유래하며, 선은 이理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선과 악의 근원이 서로 다르다고 엄격하게 구분한다. 선과 악의 기원을 일관되게 기氣에서 찾는 주기론과 결정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주리론적 입장은 이황李滉을 비롯한 영남학파가 취했다. 그들의 관심은 이론보다는 현실에 있었다.이론적 정합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현실에서 강력하게 윤리적 강제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리하게 이理가 우리의 삶을 능동적으로 명령한다고 까지 주장하게 되었다.
물론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주희의 어록인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이황의 주리론을 뒷받침해주는 문장, 즉 이理가 움직이는 능동적인 존재라는 내용의 문장이 있긴 있다. 그러나 그거 하나뿐이다. 주희의 전체 사상을 개관할 경우 주희가 이理의 능동성을 인정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주희의 생각과 조금 다르면 뭐 어떤가? 주희와의 차이점이 오히려 이황 사상의 개성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조 500년 동안 조선철학자들은 명목상 늘 주희의 사상만을 주종해왔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처럼 주희 사상의 미묘한 균열 사이에서 창의적이고 직실성 있는 논의들을 주구해 왔다. 주리론이 강력하게 제기되지 않았다면 조선철학사는 황량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조선조 중반기까지 주리론자들은 현실 참여보다는 은둔을 택했다. 수없는 관직 제수를 고사하고 안동에서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던 이황의 태도에서 전형적인 주리론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주기론자들은 주리론자들보다 현실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활발하게 관직 생활을 했던 이이의 모습에서 그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그들의 철학적 입장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조선 초반기의 혼란을 이겨내고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은 확고히 성리학적 정치이념을 정착시키게 된다. 주기론은 이런 성리학 일변도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실을 부정할 만큼의 부조리는 발견되지 않는다. 현실氣은 주기론자들의 손안에 있어 보였다. 그래서 주기론자들은 적극적 참여를 거부하지 않았다.
반면 주리론자들은 이理의 이념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성리학이 뿌리박은 중기의 현실조차 인정하지 못했다. 그들은 불완전한 기氣의 현실에서 벗어나 더욱더 이理가 추동하는 내면의 명령을 발견하고 따르고자 했다. 그래서 현실을 거부하고 은둔을 택했다.
물론 이런 특징은 대체적인 것일 뿐 일괄적으로 주기론자들이 현실에 참여하고 주리론자들이 전부 은둔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조선조 말기에 이르러 완전히 정반대 양상으로 변한다. 외래 문물이 침투하고 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던 무렵 주기론자들은 오히려 은둔을 택했고 주리론자들은 당당히 현실에 맞서 싸웠다.
이렇게 변화된 양상 역시 그들의 철학적 입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기론자들은 성리학이 뿌리째 부정되는 변화된 현실을 맞아 당황하게 된다 현실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상황이 도래했지만 그들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이理는 결단코 움직임이 없고 명령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기氣를 통해서만 사태의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결국 새롭게 성리학이 각광 받는 변화된 현실이 도래하기 전까지 은둔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주리론자들은 성리학이 뿌리째 도전받는 지경에 다다르자 오히려 분연히 떨쳐 일어선다. 성리학이 주도적 역할을 하던 때엔 주기론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은둔해 더 깊이 이理의 명령에 귀를 기울였으나, 성리학이 근본적으로 위험에 처하게 된자 이理의 명령을 직접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결심하게 된다. 이理는 단지 법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명령하는 존재가 된다. 항일투사로 나서라고 명령하고 타락한 현실을 꾸짖는 준엄한 능동적 존재로서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실제로 주기론자 가운데 항일투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영남을 근거지로 한 주리론자들은 격렬하게 대외항쟁에 나선 바 있다. 이를 통해 철학적 입장의 차이가 시대와 현실에 따라 어떻게 정반대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주리론은 서학西學과 손을 잡기도 한다. 그 중심에 정약용丁若鏞이 있다. 그는 주리론적 입장을 기반으로 하면서 서학을 도입해 이理의 이념성과 능동성을 극단화시킨다. 그가 서학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신神이었다. 신은 이理보다도 더 능동적이고 더 준엄하고 더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는 신을 통한 구원이 곧 궁극적으로 유교적 구원이라고 여겼다. 서학과 주리론은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시 천주교에 귀의했던 세력이 주리론자들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주리론과 서학의 이론적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주리론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서구문물에 반대했던 주리우파는 조선말기 위정척사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다. 반면 주리론적 입장에서 출발하면서 서학까지 받아들인 주리좌파는 조선말기 실학의 양대 세력 가운데 하나를 구성하게 된다. 똑같이 주리론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좌우파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채석용, 『철학 개념어 사전』, 소울메이트(2010), 364-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