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념 정의
이용후생(利用厚生)은 백성의 생활에 유용한 사물과 기술을 활용하고(利用), 생활을 풍요롭고 안정되게 함으로써(厚生)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하려는 유학적 경세 이념이다. 조선 후기 실학, 특히 북학파의 사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이용’은 단순히 사물을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생산과 유통, 기술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인간의 삶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후생’ 역시 재산의 축적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 조건의 개선과 민생의 안정까지 포괄한다.
이용후생은 흔히 경세치용(經世致用), 실사구시(實事求是)와 함께 조선 후기 실학의 주요 지향으로 설명된다. 경세치용이 제도와 학문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실사구시가 사실과 증거에 근거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를 강조한다면, 이용후생은 생산·기술·경제 활동을 개선하여 백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데 무게를 둔다. 다만 이 세 개념이 조선 후기 모든 실학자에게 동일한 체계로 공유되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최근 실학 연구는 실학을 단일한 학파나 고정된 교리로 간주하기보다 다양한 학문적·정치적 실천을 포괄하는 역사적 개념으로 검토한다.
2. 철학사적 배경과 발전 과정
이용후생의 사상적 배경은 유교의 민본적 정치관과 경세론에서 찾을 수 있다. 유교 정치사상에서 통치의 정당성은 백성의 생업과 생활을 안정시키는 일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서경』의 민생 관련 관념과 『논어』의 경제적 안정 및 교화에 관한 논의는 백성의 생활 조건을 정치의 중요한 과제로 보는 전통을 형성했다. 다만 조선 후기의 이용후생론을 고전 유학의 단순한 반복으로 볼 수는 없다. 청나라의 발달한 기술과 상업, 도시문화에 대한 관찰, 조선 사회의 빈곤과 생산성 문제에 대한 비판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문제의식이 형성되었다.
18세기 북학파의 홍대용·박지원·박제가 등은 청의 문물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조선의 생산과 유통 및 생활환경을 개선할 방안을 모색했다. 이들은 선진 문물을 오랑캐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실제로 유용한 지식이라면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와 무관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수레와 도로, 상업과 유통, 농업 및 수공업 기술 등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그의 관심은 단순히 청의 풍속을 모방하는 데 있지 않았다. 물자의 이동과 교환이 원활하지 못하면 생산물이 충분해도 백성의 생활이 개선되기 어렵고, 기술과 상업을 억제하면 국가의 부와 국방 역량 역시 약화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핵심이었다. 박제가의 부국강병론을 다룬 변원섭의 연구에서도 『북학의』의 문물 수용과 경제적 개혁, 국방 역량의 강화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용후생은 학문을 경전의 해석이나 도덕적 수양에 한정하지 않고, 현실의 제도와 기술을 개선하는 실천적 지식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3. 핵심 쟁점과 철학적 구조
첫째, 도덕과 경제의 관계이다. 전통적인 유교 정치사상에서 경제적 풍요는 도덕적 삶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지만, 부의 축적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이용후생론은 도덕과 경제를 단순히 대립시키기보다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일이 어떻게 좋은 정치와 사회적 질서에 기여하는지를 묻는다. 따라서 이용후생은 경제적 효용을 강조하면서도 그 효용이 누구의 삶을 개선하고 어떤 사회적 목적에 기여하는지 검토해야 하는 사상이다.
둘째, 기술과 상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던 사회에서 북학파는 상업과 유통, 수공업 및 기술의 발전이 사회적 부를 증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박제가는 물자의 유통을 막는 제도적 장애와 기술의 낙후성을 비판했다. 이는 사물의 가치를 추상적인 명분보다 실제 기능과 사회적 효과를 통해 평가하려는 태도였다. 그러나 북학파의 주장을 현대적 자유시장경제나 산업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들의 개혁 구상은 유교적 경세의 틀 안에서 민생과 국가의 부강을 함께 추구한 것이었다.
셋째, 외래 지식의 수용과 실용적 판단이다. 이용후생의 중요한 특징은 지식의 가치를 출신 지역이나 전통의 권위만으로 결정하지 않는 데 있다. 청나라의 기술과 제도 가운데 조선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태도는 실사구시와 연결되지만, 경험적 관찰과 실용적 효과를 중시한다고 해서 모든 전통적 가치나 이론을 무조건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데 있다.
넷째, 민생의 풍요와 국가의 부강 사이의 긴장이다. 이용후생은 백성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목적을 두지만, 북학파의 논의에서는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 강화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 두 목표는 서로 보완될 수 있지만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부강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백성에게 과도한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용후생의 규범적 의미를 평가할 때에는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그 성과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분배되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4. 현대철학적 의의
현대적 관점에서 이용후생은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 공공정책 및 사회복지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가 발전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 변화가 실제로 생활의 불편을 줄이고 생계의 안정성을 높이며, 더 많은 사람이 개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용후생의 관점은 기술과 경제를 도덕적·사회적 판단으로부터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기술의 발전이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환경을 훼손하거나 노동자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면, 그것을 온전한 후생의 증진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이용후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경제적 효율성과 삶의 질, 기술의 편익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평가하는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이용후생을 현대의 복지국가론이나 지속가능발전론과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조건에서 형성된 경세 이념이며, 현대적 적용은 그 역사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민생을 중심에 두는 문제의식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5. 종합적 정리
이용후생은 유용한 지식과 기술, 생산 및 유통 체계를 활용하여 백성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의 실질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경세 이념이다. 조선 후기 북학파는 이를 바탕으로 청의 문물을 관찰하고 조선의 경제·기술·제도적 한계를 비판했다. 이용후생의 철학적 의의는 학문과 정치의 가치를 추상적인 명분에만 두지 않고 현실의 삶을 개선하는 효과와 연결했다는 데 있다. 동시에 그 효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며 도덕적·사회적으로 정당한지를 묻는 문제도 남긴다. 이러한 점에서 이용후생은 실용적 지식과 민생의 안정, 사회적 책임을 함께 사유하게 하는 한국철학의 중요한 개념이다.
참고문헌
- 이경구. (2012). 「조선후기 주자주의의 동향과 이용후생 개념의 부상」. 『개념과 소통』, 10.
- 백민정. (2024). 「20세기 후반 실학연구의 쟁점과 전망」. 『한국실학연구』, (48), 49–102.
- 변원섭. (2020). 「『北學議』 兵論으로 본 朴齊家의 强兵育成策 硏究」. 『군사연구』, (149), 223–248.
주요 원전
- 박제가. 『북학의(北學議)』.
- 박지원. 『열하일기(熱河日記)』.
-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 『논어(論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