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리는 인간을 그 주변 환경으로부터 구별시키는 인간 상황의 몇몇 측면들을 이야기했다. 거기서 우리는 인간의 가진 자유와 지적인 능력들을 언급하면서, 이 능력의 주된 목표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진리 및 지식의 획득에 대해서는 잠시 미루어 두었다. 이제 앞으로 두 장에서 이 두가지 기존 개념들을 다루어 보기로 하자.

그런데 진리와 지식이라는 주제를 놓고서는 이야기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을 할 만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진리라는 것과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가지는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할런지 모른다. 고대의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는 그 당시에 이미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며, 사물은 사실상 각 개인이 지각하는 그대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사물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방식이라든가, 실재에 대한 사람들 간에 공통된(inter-subjective)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그 주된 이유는 지식이나 진리가 정말로 무엇인지를 만족스럽게 설명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할 수 없는 까닭은 개념들 자체가 일관성이 없기(incoherent)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도전은 언제나 그 회의론을 자기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적용하게 함으로써 물리칠 수가 있다. 우리는 만약에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옳다면, 바로 그들 자신의 원칙이 참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으며, 그래서 그들 자신이 자기 이론이 참임을 알고 있노라는 주장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오래된 전략이다. 플라톤은 그의 대화편들 가운데 하나인 《테아에테투스》에서 이런 전략으로 프로타고라스를 비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프로타고라스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이런 것이 아닐런지요. 즉 자신까지도 포함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인간이 척도임을 믿지 않고 있다면 — 그건 사실 그런데 말이지요 —, 그가 책에 쓰고 있는 이 진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참이 될 수 없겠지요. 반면에 그는 참이라고 믿고 있는데, 대중이 그에게 동의하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수적으로 앞서는 만큼, 그것은 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거짓에 가깝게 되겠지요.

테오도루스: 그런 결과가 따르겠지. 참인지 거짓인지가 만약에 각 개인의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면 말일세.

소크라테스: 그렇습니다. 그것은 게대가 정말 미묘한 결론을 포함합니다. 뭔고 하니 프로타고라스 쪽에서 모든 사람의 의견이 가각 옳다고 인정하면, 그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 — 즉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의견 — 마저도 참이라고 인정해야 됩니다.

테오도루스: 확실히 그렇지.

소크라테스: 그가 자신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옳은 것으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의 견해가 거짓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테오도루스: 불가피한 일일 테지.

소크라테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틀렸다고 하지는 않을 테지요.

테오도루스: 그렇겠지.

소크라테스: 그에 반해 프로타고라스는 다시 한번 더 자신이 쓴 바에 따라서 그들의 이런 의견이 여타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옳다고 인정해야겠지요.

테오도루스: 맹백히 그렇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프로타고라스의 견해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될 테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가 일반인에게 동조하든가 해야 되겠지요. 그가 반대자들에게 자기에게 반대되는 의견이 옳음을 인정한다면, 그 순간부터 프로타고라스 자신의 거리의 개나 사람이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지요. 그렇지 않을까요?

테오도루스: 그러하네.

소크라테스: 모든 사람들에게서 공격을 받는다면, 프로타고라스의 진리는 어떤 사람에게도 진리가 될 수 없을 겁니다. 그 자신뿐 아니라 그 밖의 누구에게도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수사학적인 지적으로 그칠 수가 없다. 앞으로 우리는 진리 및 진리에 관한 지식에 대한 이론을 내놓을 것이다. 이 이론이 물론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 및 지식의 이상에서 모순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또 우리가 이 이상들을 추구하지 말아야 될 이유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 주제를 다루는 차례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하겠지. 진리를 지식보다 먼저 다루어야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지식은 진리에 대한 지식이다. 그래서 진리 개념은 지식 개념보다 더 기본적인 것이다. 이 점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은 우리가 여태 모르고 있고, 또 결코 알려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런 진리들이 물론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지식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이고, 따라서 먼저 살펴봐야 된다.

우리는 우선 진리에 관한 몇 가지 정의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 정의들 각각은 부적합함이 드러날 터인데, 그 부적합함을 발견하는 데서 오는 교훈이 앞으로 진리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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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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