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2년, 장기비상근예비군 제도에 시작을 함께 할 때,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퇴사했다. 긴 시간동안 회사를 비우면서 인원TO까지 잡아먹기는 싫었다. CEO를 비롯한 회사 구성원들과도 잘 지냈고, 내 직무에서도 빛을 발하던, 회사원 커리어를 통틀어 두 번째로 빛나던 시절이었다. 회사에서 휴직을 시켜준다고도 말했다.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내가 회사에 끼치는 피해가 있을까 하여 퇴사를 진행했다.
퇴사를 진행한 이유 중 하나는 실업급여 지급을 받고자 함인데, 법리해석에 따라 들쭉날죽한 결과 때문에 결국 받지도 못하고 낙동강 오리 한마리가 되었다.
180일. 이 숫자는 1년의 거의 모든 평일을 군에 할애해야 하는 수치이다.(1년 평균 근무일 250일, 1개월 당 평균 근무일 20일) 심지어 작년에는 5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모든 평일을 근무해도 결국 180일을 모두 소진하지 못하였다. 그 정도로 긴 일수이다. 이는 1월부터 12월까지 한달 평균 15일을 부대로 출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달 평균 근무일수가 약 20일 정도이니, 굳이 따지자면 휴가가 좀 많은 직장동료 수준이 된다.
하지만,
시험운용 2년차에 접어들며 엄청난 소식이 발표된다. 중령, 원사 보직을 제외한 95% 보직의 근무일을 최대 100일까지만 가능하게 한 것이다. 내 보직 또한 100일로 줄어들었다. 육군의 평가는 180일까지 필요없다는 의견이었다. 현역과 똑같은 일과(체력단련, 부대단결행사, 부대운영 등)을 참가하게 지시했으면서, 그 시간은 전투준비 시간이 아니라서 필요없으니 줄이겠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군은 최대 180일까지 복무할 수 있다고 여전히 홍보 하고 있다. 2023년 7월 현재, 180일 근무는 오로지 1명 뿐이다.
이 소식을 들은 어떤 예비군 동료는 다른 사람들이 멍청하게 있는대로 솔직하게 적어내서 이 상황이 된 것이라고, 180일 적용대상인 예비군 선배는 일단 본인은 180일이 유지된다는 안도감과 미안함에 그저 조용히 본인임무만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난 것, 다들 각자의 길을 대비해야 했다.
나는 남기로 했다. 나는 이 제도의 끝을 보고 싶었고, 이왕이면 발전된 모습으로 마무리를 지었으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2022년 첫해에 복무했던 50명 중, 2년차 지원 및 면접에는 35명만 지원했고, 그중 다수가 탈락되고 새로운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며 2023년에는 총 2개사단, 1개보급단 총합 약 80명 정도로 인원이 보충되었다.
합격자 발표를 받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합격의 기쁨과 안도 보다는, 아이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 해낼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대기업 계약직 전형도 통과해보고, 보안업체 특수경비원 면접도 보고, 네트워크 엔지니어직 인터뷰도 진행했다. 나의 능력과 이력, 일에 대한 열정은 어디가서도 면접관의 환영을 받았지만, 1년에 동원훈련이100일이라는 말을 전하면, 한결같이 난처해 하는 모습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나는 몇 년만에 다시 거절에 익숙해져야 했다.
여기저기 다닐 회사를 찾다가, 예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홈페이지 제작 겸 서버관리를 해줄 수 있겠느냐는 업무 제안과 함께. 그래서 똑같이 얘기했다. 나는 1년에 동원훈련이 100일이다. 새로운 제도이고 앞으로 회사 입장에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라고.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해할 수 있다. 예비군 나가지 않는 날만 나와서 일하면 되지 않느냐. 다만 4대보험은 좀 곤란하다.”
나도 처음에는 4대보험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모님이 계속해서 4대보험 되는 회사여야 한다는 말씀이 있으셔서, 아내도 그것을 바라기도 하고. 하여 4대보험에 관해서 협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그래 4대보험 넣는 대신에, 네가 예비군훈련을 많이 나가니깐 급여는 월 150으로 하자.”
“근로계약서 상에는 주3일 출근이긴 하지만, 네가 예비군 훈련을 많이 나가니깐 매일 출근해라.”
예비군법 제10조(직장보장) 다른 사람을 사용하는 자는 그가 고용한 사람이 예비군대원으로 동원되거나 훈련받을 때에는 그 기간을 휴무로 처리하거나 그 동원이나 훈련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전문개정 2010. 1. 25.]
나는 근로계약을 뛰어넘는 (주3일, 월 150에 근로계약서상에 휴무인 평일2일까지 추가 출근하지만 급여나 수당을 받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수락하고야 말았다. 국가가 제정하고 보호하는 최소한의 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나는 처음에 프리랜서 개념으로 시급 18,350원을 제시했었다. 처음엔 좋다고 하더니, 내가 한 달을 회사만 출근하면 주어야 하는 급여가 크니(3,835,150원) 4대보험 적용에 회사가 줄 수 있는 최저 금액으로 최종 제시를 한 거다.
결국 이 조건을 내가 합의한 것이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기도 안되면 정말 다른 곳에는 취업할 수 없다는, 그간의 거절로 인해 겁먹은 자신과, ‘이제는 아기 아빠가 되었으니 자존심 같은 건 버리고 살아라’라는 아버지 말씀 덕분에, 제안에 대한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아마도, 사장은 나의 이런 사정까지 파악하고 더 가혹한 조건이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판단까지 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어처구니 없는 근로조건이지만 그 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딱 하나, 예비군 복무하는 것을 이해해준다는 점을 믿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이 다급하고 조급해지면 상황을 읽어내는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사총무팀으로 회사의 CEO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직무로 8년이나 회사생활을 했는데, ‘사장’이라는 종족의 사고방식에 대해 잊어먹었다는 큰 실책을 저질렀다.
그걸 알게 된 첫 번째 계기는, 훈련일정의 변경으로 기존에 잡아놨던 출근 일정에 변경이 생겼을 시점이었다.
네가 처음 말한 일정과 다르지 않냐,
네가 해야할 계획이 있는데(나한테 전혀 말해주지 않은 원대한 계획) 그냥 에비군이라고 가버리면 어떻하냐,
작업물 완성은 언제 되는거냐,
아예 회사 그만둘거냐(입사한 지 한달 만에 들었다) 등등
예비군 같은 건 이해해줄 생각은 없고, 회사에서 돈을 주니 내 말을 따라라… 라는 식으로 나를 가스라이팅 했다.
그래서,
예비군 소집훈련 기간 중에도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도, 새벽 두세시까지 작업물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의 소집훈련기간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 출근을 했을 때,
인사를 받던 사장의 차가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다음번 훈련소집기간.
이번엔 저번보다 더 길었다. 또한 부대 일정이 바뀌어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회사를 떠나있어야 했다. 소집훈련을 갈 때, 이번에 이렇게 길게 소집되면 남을 일수가 몇 일 안되니 후반기에 회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장은 지금 당장 자리에 없는 것에 불만이었다. 내가 예비군을 가는 것은 내 사정이고, 사장인 본인은 사장의 사정을 챙겨야겠다는 것이다. 소집을 가 있는 매 주말 동안, 다음주는 출근이 가능하냐고, 출근이 불가능하면 군을 관둬서라도 회사에 나오라고 종용했다.
“내가 너를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이제”
라는 최후통보 같은 불안한 말로 나를 위협했다.
결국, 회사의 입장은, 7월에는 근무를 하지 않았으니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4대보험 비용만 부담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나는 앞서 근로조건을 체결했을 때와 같은 이유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왕 대답 할거라면 당당하게 라도 말해보자는 실낱같은 자존심을 한번 세워보면서.
또 이런 말도 들었다. 이 말을 듣고 나자, 예비군 가는걸 이해해 준다느니, 예비군 나가니깐 급여를 주3일 근무, 월 150을 책정하겠다느니 했던 모든 말이 그저 일단 나를 채용시키고 보자는 사탕발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 내가 너 예비군 간다고 보름동안 빠졌는데도 월급 다 줬는데 말이야. 이런 식으로 할거야?”
처음에 나의 정당한 능력에 대한 급여조건이 아닌, 애초에 예비군 복무 때문에 근무일수가 줄어드니 급여를 후려쳤는데, 예비군을 간다고 이 급여를 주는 것조차 아깝다는 식의 저 말을 들으니, 순간 멘탈이 바사삭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애초에 낮은 급여를 주는 조건이 거짓말이었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예비군법 제10조(직장보장) 다른 사람을 사용하는 자는 그가 고용한 사람이 예비군대원으로 동원되거나 훈련받을 때에는 그 기간을 휴무로 처리하거나 그 동원이나 훈련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전문개정 2010. 1. 25.]
2023년 고용노동부 고시로 제정된 최저시급은 9,620원, 이를 월급으로 환산할 경우 1주 소정근로 40시간 근무 시(유급 주휴 포함, 월 209시간 기준) 2,010,580원이며, 업종별 구분 없이 전 사업장에 동일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로 규정된 대한민국 노동자로서의 최소기준과, 예비군으로서의 최소한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그리고 보호받지도 못했다. 결정은 내가 했으니 내가 자처했다고도 생각되지만, 물러서거나 돌아갈 곳이 없던 막다른 길이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을 다니는 모든 예비군이 뉘앙스만 다를 뿐 나와 같은, 생계와 예비군 생활을 병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로 힘들 것이라 예상한다. 또한, 경영자의 입장에 있는 예비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군에 투자하는 시간과 정성만큼 회사 경영에 소흘해질 수 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거기에 전문자격을 준비하거나, 창업을 준비하거나, 육아와 군복무를 병행하는 엄청난 스케쥴을 소화하거나, 군인이나 군무원으로 다시 군문에 들어오려는 노력을 하는 예비군마저도 본인의 시간과 열정을 쪼개어 ‘장기비상근예비군제도’에 쏟아 부우며 군복무와 자기생활 간의 줄타기를 계속하는 중이다.
군에서는 자영업자, 프리랜서들이 장기비상근예비군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하지만, 2년차 장기비상근예비군으로서 느끼는 점은 ‘그 어떤 직군의 여유있는 사람을 데려와도’ 현역과 같이 일과를 진행하고 동원훈련, 전술훈련, 각종검열 등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시 증/창설 계획과 실행사항을 함께하고, 평시 모든 전투장비 운용100%를 목표로 관리/정비’하는 장기비상근예비군 업무는 벅찰 것이다. 이 부문에 대해서는 더 연구해서 발전안으로 모색해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는 이유는 장기비상근예비군 복무가 나의 못다한 충성심과 사명감을 불태우기 때문이다. 나는 군인을 그만하고 싶지 않았다. 내 적성에도 맞고, 하루하루가 재미있었다. 훈련과 근무, 기동/화력 장비관리, 작업과 집합, 병력관리와 인간관계 그 어떤 것도 쉬운 것은 없었지만, 해냈을 때의 보람은 어느 때보다 컸다.
하지만 그때는 어렸었고, 부모님의 4년제 대학 졸업한 아들의 대한 바램을 차마 꺾을 수가 없었다. 졸업만 하면 대시 재입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자금대출'(내가 받을 시절에는 4% 대의 고정금리였다)은 생각보다 상대하기 버거웠고, ‘얼른 갚고 나의 길을 정하자’로 노선을 정한 것이 세월이 지나버렸다.
세월이 더 지나기 전에, 다시 한 번 군에 들어와, 군인의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 그저 너무 좋다. 내 동기 중 한명은 ‘당직을 서봐야, 그 말 쏙 들어가지.’ 라고 놀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의 예비군복무를 응원해준다. 현역은 임무와 생계가 하나의 줄기이지만, 예비군은 임무수행과 생계유지가 완벽히 별개의 다른 줄기이기 때문에. 현역 만큼 힘든 길을 개척하가는 동기를 멀리서라도 응원해 준다.
아마도 지금의 회사생활은 다음번 장기 훈련소집때는 유지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악랄한 조건을 견뎌야 할 지도 모른다. 군의 지휘부가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현재 예비군 제도의 태생적 한계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여기 제도 개선의 최전방에 서 있다. 한계를 극복하고, 없었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삶의 무게도 무겁지만, 지금 내가 여기서 하지 않으면 예비군 자체의 발전이 더뎌질 것 같다는 10년차 직장인의 감 또한 무시하지 못하겠다. 뭐라도 해보자. 다만 방향성을 잃지 말고.
4개의 댓글
저도 작년에 다른 단기비상근 분이 군무원한테 여러가지 물어봤던거 기억나네요. 자기가 민원도 다른데 여럿 넣어보고 그랬다는데, 서로 해명이 모순된다고 하더라구요. 어디는 비상근은 노동자가 아니라 군에서 4대보험 적용 안된다고 하고 뭐 잘 기억은 안나는데 암튼 그 분은 육아휴직 내고 비과세인 비상근 하고 있다고 하고 내년에 장기 비상근으로 뽑혔다고 마지막날에 그랬는데 역시 제도가 백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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