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인 韓國聖人
한국 천주교회 103위 성인의 총칭. 축일은 9월 20일. 축일의 명칭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 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 103위 성인 중 기해 · 병오박해 (己亥 · 丙午迫害) 순교자 79명은 1925년 7월 5일에, 병 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24명은 1968년 10월 6일에 시복되었으며,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에 의해 1984년 5 월 6일 모두 시성되었다. 103위에 포함되어 있는 프랑스 의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 10명의 선교사(주교 3명, 신부 7 명)들 또한 한국 선교사로서 한국인들의 영혼 구원을 위 해 목숨을 바쳤으므로 한국 교회에 속하는 성인들이다.
〔순교 시기 · 형식 · 장소〕 한국 성인 103명을 순교 시 기별로 구분해 보면 1839년 기해박해 때의 순교자가 70 명, 1846년 병오박해 때의 순교자가 9명, 1866년 병인 박해 때의 순교자가 24명이다.
기해박해 순교자는 순교 순서대로 이호영(李, 베드 로), 정국보(丁, 프로타시오), 김아기(金阿只, 아가타), 박아기(朴阿只, 안나), 이조이(李, 아가타), 김업이(企業 伊, 막달레나),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 한아기 (韓阿只, 바르바라), 박희순(朴喜順, 루치아), 남명혁(南 明赫, 다미아노), 권득인(權得仁, 베드로), 장성집(張, 요셉), 김(金, 바르바라), 이(李, 바르바라), 김노사(金 老沙, 로사), 김성임(金成任, 마르타), 이매임(李梅任, 데레사), 김장금(金長金, 안나), 이광렬(李光烈, 요한) , 이영희(李英喜, 막달레나), 김누시아(金累時阿, 루치 아), 원귀임(元貴任, 마리아), 박큰아기(朴大阿只, 마리 아), 권희(權喜, 바르바라) 박후재(朴厚載, 요한) 이정 희(李貞喜, 바르바라), 이연희(李連熙, 마리아), 김효주 (金孝珠, 아네스),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앵베르 (L.-J.-M. Imbert, 范世亨, 라우렌시오) 주교, 모방(P.P. Maubant, 羅伯多祿, 베드로) 신부, 샤스탕(J.H. Chastan, 鄭牙各伯, 야고보) 신부,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 유진 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 허계임(許季任, 막달레나) ,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 김유리대(金琉璃代, 율 리에타), 전경협(全敬俠, 아가타), 조신철(趙信喆, 가를 로),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 박봉손(朴鳳孫, 막달레 나), 홍금주(洪今珠, 페르페투아), 김효임(金孝任, 골롬 바), 김(金, 루치아), 이(李, 가타리나), 조(趙, 막달레 나), 유대철(劉大喆, 베드로), 유조이(柳, 체칠리아), 최 창흡(崔昌洽, 베드로), 조증이(趙曾伊, 바르바라), 한영 이(韓榮伊, 막달레나), 현경련(玄敬連, 베네딕다), 정정 혜(丁情惠, 엘리사벳), 고순이(高順伊, 바르바라), 이영 덕(李榮德, 막달레나), 김(金, 데레사), 이(李, 아가타), 민극가(閔克可, 스테파노), 정화경(鄭, 안드레아), 허임 (許, 바오로), 박종원(朴宗源, 아우구스티노), 홍병주(洪 秉周, 베드로),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 이경이(李璟 伊, 아가타), 이인덕(李仁德, 마리아), 권진이(權珍伊, 아 가타), , 홍영주(洪永周, 바오로), 이문우(李文祐, 요한)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 김성우(金星禹, 안토니오) 등 이다. 이들 중에는 1839년을 전후하여, 즉 1838년이나 1840~1841년에 순교한 이들도 있으나, 모두 포함하여 ‘기해박해 순교자’ 라고 한다.
병오박해 순교자는 순교 순서대로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하여 현석문(玄錫文, 가롤로), 남경 문(南景文, 베드로), 한이형(韓履亨, 라우렌시오), 우술 임(禹述任, 수산나), 임치백(林致百, 요셉), 김임이(金任 伊, 데레사), 이간난(李干蘭, 아가타), 정철염(鄭鐵艷, 가타리나) 등이다.
병인박해 순교자는 순교 순서대로 유정률(劉正律, 베드로), 베르뇌(S.F. Berneux, 張敬一, 시메온) 주교, 브르 트니에르(S-M-A-A-J. Ranfer de Bretenières, 白, 유스토) 신 부, 도리(P.H. Dorie, 金, 베드로) 신부, 볼리외(B.-L.Beaulieu, 徐沒禮, 베르나르도) 신부, 남종삼(南鍾三, 요 한), 전장운(全長雲, 요한), 최형(崔炯, 베드로), 정의배 (丁義培, 마르코), 우세영(禹世英, 알렉시오), 다블뤼 (M.N.A. Daveluy, 安敦伊, 안토니오) 주교, 위앵(M.L.Huin, 閔, 마르티노 루가) 신부, 오메트르(P. Aumaitre, 吳, 베드로) 신부, 장주기(張周基, 요셉), 황석두(黃錫 과, 루가), 손자선(孫, 토마스), 정문호(鄭, 바르톨로메 오), 조화서(趙, 베드로), 손선지(孫, 베드로), 이명서 (李, 베드로), 한재권(韓, 요셉), 정원지(鄭, 베드로), 조 윤호(趙, 요셉), 이윤일(李尹一, 요한) 등이다. 순교 형식별로 살펴보면 참수 순교자가 60명으로 가장 많고, 군문 효수가 16명, 교수가 15명, 옥사가 11명, 장사가 1명이다. 순교지별로는 서소문 밖 네거리가 44 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새남터가 11명, 당고개가 9 명, 전주 숲정이와 서천교가 7명, 충청도의 수영(水營) 이 있던 보령(保寧)의 갈매못이 5명, 평양 · 대구 · 공주 가 각각 1명이며, 나머지 24명은 서울에서 교수되거나 옥사하였다.
〔성별 · 신분 · 직업과 신앙 경력〕 성인들의 성별은 남 자가 56명(선교사 10명 포함)이고 여자는 47명이다. 연령 상으로는 13세의 유대철이 최연소자이고 78세의 유조이 가 최고령자이며, 40대가 30명으로 제일 많고, 50대가 23명, 30대가 20명, 20대가 19명, 10대가 4명, 60대가 4명, 70대가 3명이다. 출신 지역별로는 서울이 27명으 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경기도가 21명, 수원 · 광주 · 시 흥은 각각 4명, 이천은 3명, 용인은 2명, 양주 · 고양 · 양근 · 개성이 각각 1명씩이다. 충청도는 김대건 신부의 고향인 면천 솔뫼 3명, 홍주 3명, 진잠 · 임천 각각 2명, 정산 · 덕산 · 충주 · 연풍 각각 1명씩으로 도합 15명이 다. 이 밖에도 강원도 회양, 황해도 서흥, 평안도 평양 논재에서 각각 1명씩이며 출신지가 미상인 나머지 20여 명은 시골 출신도 있으나 대부분은 서울로 이주해 와서 살다가 순교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 성인들의 신분 · 직업은 아주 다양하다. 양반 · 중 인 · 상인 출신이 골고루 섞여 있으며, 승지(承旨) · 선공 감(繕工監)과 광흥창(廣興倉)의 관리, 군인 · 궁녀 등이 있는가 하면 상업 · 농업 · 약국 · 인쇄 · 서사업(書寫業) , 짚신 장사 등을 하거나 길쌈과 삯바느질 등으로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던 순교자들도 있었다. 집안 형편은 거의 가난하고 궁핍한 편이었지만, 최경환 · 김효임 · 김효 주 · 유진길 · 김제준 · 정화경 · 김성우 · 임치백 등과 같 이 생계에 곤란을 느끼지 않거나 부유한 경우도 있었다.
신앙 경력에서 볼 때 태중 교우는 34명이며, 그중 무 려 16명이 순교자의 후손이다. 즉 김제준과 그의 아들 김대건 신부, 김 신부의 당고모 김 데레사를 비롯하여 정 하상 · 정혜 남매, 현석문 · 경련 남매, 홍병주 · 영주 형 제, 박후재, 남이관, 최창흡, 조증이, 고순이, 박종원, 손 소벽 등이 그러하다. 단순한 태중 교우는 김 바르바라, 이 바르바라, 최경환, 김 율리에타, 이 가타리나, 정화 경, 이문우, 최영이, 우술임, 김임이, 정철염, 전장운, 최 형, 손자선, 한원익, 정원지, 조윤호, 이윤일 등 18명이 다. 또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신앙 생활을 했을 것 으로 생각되는 교우는 이호경, 박아기, 이 아가타, 김업 이, 한아기, 권득인, 김장금, 김 루치아, 조 막달레나, 조 화서, 이명서 등 11명 정도로, 모친이 교우였던 경우는 5명, 부친이 교우였던 경우는 1명이다.
새로 입교하여 순교에 이른 교우들도 45명이나 된다. 원귀임, 홍금주, 유대철, 이 아가타, 손선지처럼 어려서 입교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장성한 뒤 입교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년에 입교한 이광헌, 박희순, 남명혁, 장성 집, 김노사, 권희, 김효주 · 효임 자매, 유진길, 허계임, 전경협, 조신철, 박봉손, 유조이, 한영이, 민극가, 남경 문, 장주기, 황석두, 정문호 등은 보통 가족이나 친척, 또는 교우의 권면으로 개종하였다. 비신자로서 체포된 후 옥중에서 세례를 받은 경우도 2명이나 있다. 김아기 는 옥중에서 대세를 받았고, 임치백은 옥중에서 김대건 신부를 만나 교리를 배우고 영세하였다.
〔특징 및 의의〕 프랑스 선교사 10명을 제외한 한국 성 인 93명 중에서 성직자는 김대건 신부가 유일하고, 나머 지 92명은 모두 평신도이다. 따라서 한국 성인의 교회 활동과 순교는 그 자체로 한국 교회의 평신도상을 잘 설 명해 주고 있으며, 평신도의 종말론적(終末論的) 영성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가를 잘 알게 해 준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는 정하상이지만, 103위 성 인 중에는 그처럼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한 순교 자들이 아주 많다. 우선 회장으로 활동한 이들은 정하상 을 비롯하여 이광헌, 남명혁, 최경환, 김제준, 남이관, 정화경, 민극가, 홍병주 · 영주 형제, 박종원, 이문우, 김 성우, 현석문, 한이형, 장주기, 손선지, 한원익, 이윤일, 정의배, 황석두 등 21명에 이르며 회장과 복사를 겸했던 이들도 있다. 조화서, 남경문과 같이 복사로만 활동한 이 들도 있다. 회장들은 성직자와 함께 혹은 성직자를 대신 하여 공소를 운영하거나 교우와 비신자들을 가르쳤으며, 때로는 목자 없는 교회를 돌보거나 성직자를 영입하는 데 힘썼고, 성직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방인 성직자를 양 성하는 일을 도왔다. 특히 정하상과 현석문 등은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대표적인 인물이고, 유 진길, 조신철, 이광렬 등은 회장이 아니었지만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들이다. 또 최경환과 같이 옥중 교우들을 방문해 위로하거나 순교자의 시신을 거두고자 노력한 순교자도 있었으며, 현석문과 같이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고자 노력한 이들도 적지 않았고, 황석두, 남종삼, 전장운, 최형 등 교회의 인쇄 출판 사업에 참여 한 이들도 있었다. 또 현석문의 누이인 여회장 현경련과 이연희, 권희, 유조이, 정정혜, 조증이, 고순이, 한영이, 김 데레사, 권진이 등은 교리를 가르치고, 냉담자를 권면 하고, 임종 시의 유아에게 대세를 베풀고,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고, 성직자들의 시중을 드는 등 다양한 활동 을 전개하였다.
한국 성인들은 대부분 대재와 애긍, 기도와 묵상, 영적 독서에 열중함으로써 자기 성화에 노력하였으며, 비신자 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교우들을 가르치고, 냉담자를 권면하고, 가난한 자와 병자를 방문하고, 임종 시의 유아 에게 대세를 베푸는 등 다양한 선행을 통해 사주구령(事 主救靈)과 애주애인(愛主愛人)의 육화론적(肉化論的) 영성을 쌓는 데 노력하였다. 또 옥중에서도 친척이나 교 우들에게 서한을 보내어 권면하기를 그치지 않은 순교자 들도 많았다. 이들은 이러한 육화론적 영성을 바탕으로 한 굳은 신심을 가지고 종말론 영성을 함양해 나갈 수 있었다.
103위 한국 성인들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죽임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박해자들 앞에서 자 신들의 목숨을 바쳤다. 그러므로 그들의 순교는 하느님 에 대한 최고의 사랑을 드러낸 것임에 틀림없으며, 동시 에 한국의 특수한 윤리 상황에서의 순교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 군부(君父)에 대한 충효 (忠孝)를 최고의 윤리로 강조하는 국가 · 사회 체제를 절 대 종교처럼 생각하였던 박해자들 앞에서 성인들은 “천 지신인(天地神人) 만물을 조성하시고 상선벌악(賞善罰 惡)하시는 대군대부(大君大父)이신 천주를 결코 배반할 수 없습니다” 라는 특수한 형식의 신앙 고백을 하였다. 천주교가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종교로 낙인찍힌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가족 · 혈연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 체제에서 살아왔던 성인들은 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육정(肉情)을 뛰어넘은 순교를 택하였다. 순교를 통한 애주만유지상(愛主萬有之上)의 증거는 육정을 이겨내느냐에 달려 있었고, 육정의 극복은 도리어 혈육 사이에서 서로의 순교를 격려하는 초자연적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한 가족에서 여러 순교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 은 바로 이 때문이다. 103위 성인 중에서 이광헌과 권희, 남명혁과 이연희, 남이관과 조증이, 조신철과 최영 이, 최창흡과 손소벽, 박종원과 고순이는 부부지간이었 고, 김대건과 김제준, 유대철과 유진길, 조화서와 조윤호 는 부자지간이었으며, 이광헌과 이 아가타, 최창흡과 최 영이는 부녀지간이었다. 또 유조이와 정정혜, 허계임과 이정희 · 영희 자매, 조 막달레나와 이 가타리나, 한영희 와 권진이는 모녀지간이었고, 정하상과 정정혜, 이호영 과 이 아가타, 이광헌과 이광렬, 박희순과 박큰아기, 이 정희와 이영희, 김효주와 김효임, 이영덕과 이인덕, 홍병 주와 홍영주, 현석문과 현경련은 형제지간이었다. 3명 이상의 순교 성인을 배출시킨 가족도 여럿 있었으니, 정 하상 가족은 모친과 동생 등 3명이 함께 순교하였고, 이 광헌은 아내와 딸, 동생 등 4명, 최창흡은 아내와 딸, 사 위 등 4명이 함께 순교하였다. 심지어 허계임과 딸 이정 희 · 이영희, 시누이 이매임, 외손녀 이 바르바라는 5명 이 모두 한 가족으로, 한국 성인 중에서 가장 많은 성인 을 배출한 가족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 기해박해 ; 박해 ; 병오박해 ; 병인박해 ; 백삼위 성인 ; 순교자 현양 운동 ; 시복 시성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2006. 12권 . pp.9456-9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