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시골사람더러 남매를 정하시자는 것도 황송한데, 무엇을 이렇게 차려 주십니까?”
금방울이 깔깔 웃으며,
“에그, 오빠도 망녕이셔라. 손아래 누이더러 황송이 다 무엇이고, 존대가 다 무엇이야요? 인저는 허소를 하십시오.”
“허소는 차차 하면 못 합니까? 누이님이 이처럼 하시니 내 마음은 어떻다 할 길 없소.”
“생애에 바쁘신데 어서 내려가시오. 내일쯤 오빠 사시는 구경도 할 겸, 언니 상회례도 할 겸 내가 내려가겠습니다.”
“누이님께서 오실 수가 있습니까? 우리 마누라를 데리고 올라오지요.”
“아우 되어 내가 먼저 가뵈어야 도리상에 당연하지요. 걱정 말고 내려가시오.”
하며 나뭇값 외에 돈 몇백 냥을 집어 주며,
“이것 변변치 않으나, 신발이나 한 켤레 사다가 우리 언니 드리시오.”
최생원이 재삼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받아 가지고 나오다가 선혜창 장에 들어가, 쌀도 좀 팔고 반찬거리도 약간 장만하여 가지고 자기 집으로 내려와 일변 집안을 정히 쓸고 지직잎 방석낱을 이웃집에 가 얻어다 깔고, 자기 아낙더러, 새둥우리 같은 머리도 가리어 쓰다듬고 보병 것이나마 부유스름하게 새것을 갈아입으라 한 후 계란낱·닭마리를 삶고 끓여 놓고 눈이 감도록 고대하더니, 거무하에 유사 사인교 한 채가 떠들어오며 금방울이 나오더니 최생원과 인사를 한 후 최생원의 마누라를 가리키며,
“오빠, 이 어른이 우리 언니시오? 처음 뵈오니까 누구신지 몰라뵈었습니다.”
하고 날아갈 듯이 절을 하며 교군꾼을 부르더니 피륙낱·담배근을 주엄주엄 내어다가 앞에다 놓으며,
“모처럼 오며 빈손 들고 오기가 섭섭해서 변변치 아니하나마 정이나 표하고자 가져왔습니다, 언니…….”
최생원의 아낙은 본래 촌 생장으로 금방울을 보니 요지에서 선녀가 내려온 듯싶어 정신이 휘둥그런 중 석새베 입던 몸에 고운 필목을 보고 순뜨지 먹던 입에 지네발 같은 서초를 보니 입이 저절로 벌어져서, 자기 딴은 인사 대답을 썩 도저히 한다는 것이 귀동대동 구석이 어울리지 아니하게 지껄이건마는 금방울은 모두 쓸어덮고 없는 정이 있는 듯이 수문수답(隨問隨答)을 하다가 최생원을 돌아보며,
“오빠, 시골 구경을 별로 못 했더니 서울처럼 갑갑하지 아니하고 시원해서 좋소. 동산에나 올라가 구경 좀 합시다.”
“봄과 달라 꽃 한 가지 없고 구경하실 것이 무엇 있나요? 아무려나, 찬찬히 가보십시다. 그렇지만 누이님같이 가만히 들어앉으셨던 터에 다리가 아프셔서 단기시겠습니까?”
“가보아서 다리가 아프면 도로 내려오지. 누가 삯 받고 가는 길이오?”
하며 최생원은 앞을 서고, 마누라와 금방울이 뒤에 따라 뒷동산으로 올라가는데 최생원 내외의 생각에는,
‘서울서 꼭 갇혀 들어앉았다가 여북 갑갑하여 저리 할라구? 경치는 별로 없지마는 바람이나 시원히 쏘이게 김판서 댁 묘소로, 이과장 집 산소로 골고루 구경을 시키리라.’
하고, 금방울의 생각에는,
‘최가의 국내가 얼마나 되노? 이놈을 잘 삶아 함진해에게 팔게 하였으면 저도 돈 천이나 착실히 얻어먹고 우리도 전 만이나 툭툭이 갖다 쓰겠다.’
하며 이 고동이 저 고동이 구경하다가,
“오빠, 댁 국내는 어디요? 아마 매우 넓지, 해마다 나무 베어다 파시는 것을 짐작하건대.”
“얼마 되지 못합니다. 우리집 뒤에서부터 저기 보이는 사태가 허연 고동이까지올시다.”
“에그, 산이나마 넉넉히 있어 나무장사라도 하시는 줄 여겼구려. 얼마 되지도 못하고 그나마 토피가 모두 벗어 나무인들 어디 있소? 그까짓 것 두시면 무엇을 하오? 뉘게 돈 천이나 받고 팔아 말바리나 사매고 삯이나 팔아먹지.”
“뫼장 쓸 만한 곳은 이왕 다 팔아먹고 지금 남저지는 애총 하나 묻을 만한 곳이 없으니 누가 사야 하지요.”
“그 걱정은 말고 내려갑시다. 내 좋은 획책을 하여 볼 것이니.”
“아무려나, 누이님 덕택만 바랍니다.”
금방울이 최생원 집으로 내려와 무엇이라고 쥐도 못 듣게 수군대더니 그길로 떠나 올라간 뒤로, 최생원이 축일(逐日) 금방울의 집에를 드나들고, 금방울도 수삼차를 최생원의 집에 다녀가더니, 최생원이 자기 마누라도 모르게 정밤중이면 뒷동산에를 슬며시 다녀 내려오더라.
하루는 동리집 개들이 법석으로 짖으며 최생원 집에 이상스러운 일이 났으니, 향곡(鄕曲) 풍속에 말탄 사람 하나만 지나가도 남녀노소가 너나없이 나서서 구경을 하는 법이어늘, 하물며 이 집에는 난데없는 행차 하나가 기구 있게 들어오더니, 사립문 앞에다 공석을 깔고 금옥탕창한 점잖은 양반이 엎드려 대죄를 하니, 보는 사람마다 곡절을 모르고 눈들이 둥그래서 쑥덕공론이 분분한데, 최생원이 먼지가 케케 앉은 관을 툭툭 털어 쓰고 나오며,
“이거, 웬 양반이 남의 집 문 앞에 와서 이 모양을 하시오? 이 양반 뉘집을 찾아왔소?”
그 사람이 머리를 땅에 조으며,
“네, 댁에를 왔습니다. 이놈은 천지간에 죄가 많은 놈이라, 하해 같은 덕을 입어 그 죄를 면하고자 이처럼 석고대죄(席藁待罪)를 합니다.”
최생원이 허허 웃으며,
“이 양반아, 댁 죄는 무슨 죄며 내 덕은 무슨 덕이란 말이오? 암만해도 댁에서 병풍상성(病風喪性)을 하였나 보오. 대관절 댁이 누구시오?”
“네, 서울 다동 사는 함일덕이올시다.”
“네, 그러하시오? 나는 성은 최가고, 자는 옥여요. 무슨 일로 찾아계십더니이까?”
“네, 다름이 아니라, 친산을 잘못 쓰고 화패가 비상하와서 장풍향양하여 백골이나 평안한 곳을 얻어 쓸까 합니다.”
“댁이 댁 산소 면례하기를 생면부지 모르는 나를 보고 이리할 일이 무엇이오, 그 아니 이상한가?”
“이렇게 댁에 와서 대죄하는 것은 당신 말씀 한마디만 듣기를 바랍니다.”
“내게 들을 말이 무슨 말이오? 나를 도선(道詵)이나 무학(無學)이 같은 지관으로 아시오? 여보, 나는 본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식쟁이라 답산가 한 구절 외우지 못하오. 여보, 댁이 잘못 찾아 계신가 보오.”
“아무리 미거하기로 잘못 찾아뵈옵고 말씀할 리가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댁 선영 국내 안에…….”
그 다음 말이 다 나오기 전에 최생원이 눈이 실룩하여지고 콧방울이 벌룽벌룽하며 부썩 도실러 앉더니,
“그래서요, 어서 말하시오.”
“일석지지만 빌려 주시면 친산을 면례하고 동산소하여 지내겠습니다.”
최생원이 벌떡 일어서며 주먹을 도실러 쥐고 꿩 채려는 보라매 눈 같이 함진해를 노려보며,
“허, 이놈, 별놈 났다! 내가 이 모양으로 구차히 사니까 얼만큼 넘보고 와서, 무엇이 어쩌고 어찌해? 묏자리를 빌려 동산소를 해? 이따위 놈은 당장에 두 다리를 몽창 분질러 놓아야 이까짓 행위를 못 하지.”
하더니 울장 한 가지를 보기 좋게 뚝딱 꺾어 들고 서슬 있게 달려드니, 함진해의 하인들이 당장 보기에 저희 상전에게 화색이 박두한지라, 제각기 대들어 최생원의 매 든 팔을 붙들다가 다갱이도 터지고, 함진해를 가려서다가 엉덩이도 쥐어질리니 분한 생각대로 하면 동나뭇단 같은 최생원 하나야 발길 몇 번이면 저승 구경을 당장에 시키겠지마는, 상전의 낯을 보아 차마 못하고,
“생원님 생원님, 너무 진노하지 마십시오. 산소 자리를 아니 드리면 고만이지, 이처럼 하실 것 있습니까?”
최생원이 하인의 말 대답은 하지도 아니하고 함진해만 벼른다.
“오 이놈, 기구도 좋은 놈이니까, 하인놈들을 성군작당(成群作黨)하여 데리고 와서, 나같이 잔약한 사람을 업수이여기는구나. 이놈, 너 한 놈 때 려 죽이고 나 죽었으면 고만이다.”
하고 울장 가지를 함부로 내두르는 바람에 사인교는 진가루가 되고, 말리러 덤비던 하인들은 오강 편싸움에 태곰보 들어온 모양으로 분주히 쫓겨 도망을 하는데, 부지중에 함진해도 당장 화색이 박두하니까 쫓겨나왔더라. 매맞은 하인들이 분함을 서로 이기지 못하여 구석구석 욕설이 나온다.
“제미를 할거, 팔자가 사나우니까 별 작자의 매를 다 맞아 보았구. 그자가 명색이 무엇이야? 다갱이에 넉가래집 같은 관을 뒤집어쓰고, 형조사령이 지나갔나? 매질을 함부로 하게. 우리 댁 영감 낯을 보니까 참고 참아 쫓겨왔지그려. 그까짓 위인을 내 발길로 보기 좋게 한 번만 복장을 질렀으면 개구리새끼 나가자빠지듯 할 것이, 가만히 내버려두니까 제 세상만 여겨서 눈에 뵈는 게 없나 본데.”
“여보게, 가만 내버려두게. 아래위를 훑어보니까, 그자가 꼴 보니 나무장사로 생애하는 위인인데, 이번에는 영감을 뫼셨으니까 하릴없이 참고 들어가지마는, 아무 때든지 문안서 한 번만 우리 눈에 걸리라게. 당장에 할아버지를 부르게 주릿대를 메워 놓을 것이니.”
한참 이 모양으로 지저귀는 것을 함진해가 듣고 그중에도 행여나 최생원을 건드려 자기 경륜을 와해되게 할까 겁이 나서 하인을 꾸짖기도 하고 달래기도 한다.
“이놈들, 그것이 무슨 소리니? 너희들이 그 양반을 함부로 대접하고 보면 내 손에 죽고 남지 못하리라. 그 양반이 시골 살아 촌스러워 보이니까 너희들이 넘보고 그리나 보구나. 이놈들아, 그 양반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일체인데, 무엇을 어찌고 어찌해? 상놈이 양반의 매 좀 맞은 것이 그리 원통하냐? 그 매는 너희를 때린 매가 아니요, 즉 나를 때린 것인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을 번연히 보며 함부로 떠드느냐? 다시 이놈들 무엇이라고 했다가는 한 매에 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