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영감, 잘 생각하셨습니다. 산소를 잘 모시어 댁내에 우환이 없으시고 겸하여 만금(萬金) 귀동자 아기를 낳으시면 그까짓 일이백 원이 무엇이오니이까? 일이천 원도 아까우실 것 없지.”
제삼일 되던 날은 함진해가 지폐 이백 원을 정한 백지에 싸고 싸서 조끼에 집어넣고 개동군령의 집에서 떠나 창의문을 나서서 인력거는 돌려보내고, 메투리에 들메를 단단히 하여 천리 ․ 만리나 갈 듯이 차림이 대단하더니, 조지서 언덕을 채 못 가서 숨이 턱에 닿아서 헐떡헐떡하며 펄쩍 해만 치어다보고 오정이 지날까 봐 겁을 더럭더럭 내어 발이 부르터 터지도록 비지땀을 흘리며 골몰히 북한을 바라보고 올라가는데, 문수암으로 들어가는 어귀를 채 못 미쳐서 어떤 자가 앞을 막아 썩 나서며 전후좌우를 휘휘 둘러보고 소매 속에서 육혈포를 내어 들더니, 함진해 턱밑에다 바싹 대고,
“이놈, 목숨을 아끼거든 지체 말고 위아래 의복을 썩 벗어라!”
함진해가 수족을 사시나무 떨듯 하며,
“네, 벗겠습니다. 벗을 때 벗더라도 제 말 한마디만 들으십시오. 제 집 내환이 위중하여 약을 구하러 급히 가는 길이오니 특별히 용서해 주시면 적지 않은 적선이올시다. 이 의복은 입던 추한 것이올시다. 내일 이곳으로 다시 오시면 입으실 만한 의복을 몇 벌이든지 말씀하시는 대로 갖다 드리오리다.”
그자가 눈을 부라리며,
“이놈아 잔소리가 무슨 잔소리야! 진작 벗지 못하고?”
하며 당장 육혈포 방아쇠를 잡아당길 모양이니 의복말고 더한 것이라도 다 내어 놀 판이라. 다시는 말 한마디 앙탈도 못 하고 윗옷부터 차례로 벗어주니, 그자가 저 입었던 옷을 앞에다 턱 던지며,
“너는 이것이나 입고 가거라.”
하고서 함진해 의복을 제 것같이 척척 입으며 조끼 속에 손을 썩 집어넣어 보더니 아무 말도 아니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지라. 함진해가 기가 막혀 그놈의 의복을 집어 입으니 당장에 더러운 살은 감추겠으나 한 가지 큰 걱정이 지폐 잃어버린 것이라. 가도 오도 못 하고 그 자리에 끌로 판 듯이 서서 입맛을 쩍쩍 다시며 혼자말로,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은가? 집으로 돌아갔다 오는 수도 없고, 빈 손 들고 그대로 가자기도 딱하지. 가기로 그가 오지 말라고 할 리는 없지마는, 여북 무심한 사람으로 여길라고? 해는 점점 오정이 되어 오고 여기까지 왔던 일이 원통하니, 아무려나 신지에를 가보는 일이 옳지. 가보고 소경력 사정이나 이야기를 하여 내 정성이나 알도록 하여 보겠다.”
하고 꿩 튀기러 다니는 사냥꾼 모양으로 단상투 바람, 동저고리 바람으로 어슬렁어슬렁 올라가며, 행세하는 터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찌하리 싶어 얼굴이 절로 화끈거려 발등만 굽어보고 걸음을 걷다가, 목이 어찌 마른지 물을 좀 먹으려고 샘물 나는 곳을 찾아 바른편 산골짜기 안 바위 밑으로 내려가더니 별안간에 주춤 서며 두 손길을 마주잡고 공손한 목소리로,
“여기 앉아 계십니까? 오늘도 시간이 늦어 아마 오래 기다리셨지요?”
“……”
“아무쪼록 일찍 오자고 새벽밥을 먹고 떠났더니, 정성이 부족함이런지, 거진 다 와서 도적을 만나 변변치 아니한 정을 표하고자 돈 백 원이나 가지고 오던 것과 관망의복까지 몰수히 빼앗겼으나, 점잖은 양반과 상약을 한 터에 실신할 도리는 없고 분주히 오느라는 것이 이렇게 늦었습니다.”
“가이없는 일이오. 횡래지액(橫來之厄)도 산화소치가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늦었으니 내일 오정에는 좀 가까이 세검정 연무대 앞으로 오시오. 나는 총총하여 가겠소.”
하더니 횡행히 가는지라. 함진해가 억지로 만류할 수 없어, 문수암을 찾아 들어가서 보교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와 노름꾼의 등단같이 돈 이백 원을 다시 변통하여 가지고 이튿날 열시가 채 못 되어 연무대 앞에 와 그자 오기를 고대하더니, 오정이 막 되었는데 그자가 한북문 통한 길로 올라오며 허허 웃고,
“오늘은 매우 일찍 오셨소구려.”
“여러 번 실기를 하여 대단히 불안하오이다.”
하며 말끝에 조끼에서 무엇을 꺼내어 두 손으로 받들어 주며,
“이것이 변변치 아니하나 주용에나 보태서 쓰시옵소서.”
그자가 펴보지도 아니하고 집어넣으며,
“그것은 무엇을 가져 오셨소? 아니 받으면 섭섭히 여기실 터이니까 받기는 받소. 나는 번거하여 이목이 수다한 데는 재미없으니 댁으로 같이 들어갈 것 없이 댁 근처 조용히 있을 주인 한곳을 정해 주시오.”
함진해가 유공불급하여,
“네, 그는 어렵지 아니합니다. 내 집도 과히 번거하지는 아니하지마는 아주 절간같이 조용한 집이 있으니 그리로 가 계시게 하지요.”
사주인을 하고많은 집에 하필 안잠 마누라 집에다 정하고, 삼시·사시로 만반진수를 차려 먹이며 아침저녁으로 대령을 하여 정성을 무진 들이며 지관의 입만 쳐다보는데, 임지관은 어쩌면 그렇게 묵중한지, 열 마디 묻는 말에 한 마디를 썩 시원하게 대답을 아니하니, 그 속이 천 길인지 만 길인지, 어여뻐하는지 미워하는지,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도무지 아는 수 없으니, 그리할수록 함진해는 목이 밭아 애를 더럭더럭 쓰며 감히 구산하러 가자는 말을 못 하고 자기 집 사정이 일시 민망한 이야기만 시시로 하더니 하루는,
“여보 주인장, 산 구경하러 아니 가보시려오? 신산도 잡으려니와 구산부터 가보십시다. 선장 산소가 어디 계시오?”
“네, 친산이 멀지 아니합니다. 양주 송산인데 불과 오십 리라, 넉넉히 되단겨라도 오시지요.”
하며 그 말을 얻어들은 김에 분주히 치행을 차릴새 장독교 두 채에 건장한 교군 두 패를 지르고, 마른 찬합, 진 찬합과 약주병·소주병을 짐에 지워 뒤딸리고 동소문 밖으로 썩 나서니, 앞에는 함진해요, 뒤에는 임지관이라. 함진해 마음에는,
‘이번 길에 천하대지를 정녕 얻어 자기 친산을 면례할 터이니 우환걱정은 다시 염려할 것 없이 만당자손도 게 있고 부귀공명도 게 있고 게 있으려니.’
하여 한없이 기꺼워 혼자 앉았든지 누구를 보든지 웃음이 절로 나와 빙글빙글하고, 임지관 마음에는,
‘어떻게 말을 잘하면, 내 말을 꼭 곧이듣고 조약돌밭을 갈아쳐도 다시 없는 명당으로 알아 불일내로 면례를 시킬꼬. 제 아비 이상으로 몇 대 무덤을 차례로 면례를 시켜 놓았으면 부지중에 내 평생 먹고 살 거리는 넉넉히 생기리라.’
하여 금방울과 안잠 마누라의 전하던 함씨 집 전후 내력을 곰곰 생각하더라. 얼마를 왔던지 장독교를 내려놓으며, 함진해가 먼저 나오더니 임지관더러,
“인제 나의 친산이 멀지 아니합니다. 찬찬히 걸어가시면 어떠하실는지요?”
“그리해 봅시다.”
하며 염낭을 부시럭부시럭 끄르고 지남철을 꺼내더니 손바닥 위에 반듯이 놓고 사면으로 돌아보며 입 속에 말을 넣고 중얼중얼하더니,
“영감, 주룡(主龍)으로 먼저 올라가십시다. 산세는 매우 해롭지 아니하여 뵈오마는.”
하면서 이리도 가서 보고 저리도 가서 보다가 눈살을 연해 찡그리고 분상(墳上) 앞으로 오더니, 펄썩 앉으며 잔디를 꾹꾹 눌러 평편하게 한 후에 지남철을 내려놓고 자오(子五)를 바로맞히더니,
“영감, 이 산소 쓴 지 몇 해나 되었소? 이 산소 모시고 화패가 비상하였겠소.”
“산소 모신 지 지금 열두 해에 화패는 이루 측량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계시오. 내 소견껏 말을 할 것이니 과히 착오나 없나 들어 보시오.”
하더니 얼음에 배 밀듯 내려 섬기는데, 함진해는 입에 침이 없이 칭찬을 한다.
“산지라 하는 것은 복 있는 사람이 길지를 만난다(福人逢吉地[복인봉길지])하였지마는, 산리를 알지 못하고 보면 번번이 이런 자리에다 쓰기 쉽것다. 태조봉이 음양취기(陰陽聚氣)를 하여야 손세가 장원하지, 그렇지 않고 독양(獨陽)이나 독음(獨陰)이 되어 사람의 부부 교합지 못한 것 같으면 자손을 둘 수 없는데, 이 산소가 독양·독음으로 행룡을 하였고, 안산에 식루사(拭淚砂)가 있으니 참척을 번번이 보셨을 것이요, 과협(過峽)은 잘되지 못하였으나 좌우에 창고봉(倉庫峯)이 저러하니 가세는 풍부하시겠소마는 과두수(裹頭水)가 있으니 얼마 아니 되어 손해가 적지 아니할 것이요, 황천수(黃泉水)가 비쳤으니 변상(變喪)이 답지하겠소.”
“과연 이 산소 모시고 자식놈 여럿을 참척 보고, 상처를 두 번이나 하고, 재산으로 말해도 부지중에 손해가 적지 않았어요.”
“허허, 그러하시리다. 이 산소는 더 볼 것 없거니와 선왕장 산소는 어디 계신가요?”
“예서 멀지 아니합니다. 이리 오십시오.”
하며 임지관을 인도하여 두어 고동이를 넘어가더니 손을 들어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산소가 나의 조부모 합폄으로 모신 곳이올시다.”
“네, 그러하시오니이까?”
하고서 쇠를 또 내어 들고 자세 살펴보더니,
“이 산소도 매우 합당치 못한걸. 용이라 하는 것이 역수를 하여야 생룡이라 하거늘 순수도곡에 골육수(骨肉水)가 과당하고 또 주엽산 큰 맥이 졸지에 뚝 떨어져 앞에 공읍사(拱揖砂)가 없고, 장단이 부제하여 여기도 쓸만하고 저기도 쓸 만하니, 이는 허화(虛花)라. 모르는 사람 보기에는 좋을듯하나 용진호퇴(龍進虎退)하여야 할 터인데, 용호가 저같이 상충(相衝)하니 대소가가 불목할 것이요, 청룡이 많을 다자로 되었으니 자손은 번성하겠소마는 제일절이 저함하였으니 종손은 얼마 아니 가서 절대(絶代)가 되는장손 과격이오. 영감 댁 작은댁이 어디 사는지 영감 댁은 자손이 없어도 그 댁에는 자손들이 선선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