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생면부지(生面不知) 과객 따돌리듯 하려 드니 함상인이 분이 날대로 나서,
“무엇이 어쩌고 어찌해? 칠성 기우를 하기에 그렇지, 팔성 기우쯤 했드면 천일 부정을 볼 뻔했네그려. 부정은 누가 똥칠하고 다닌다던가? 자네가 명색이 무엇인데 누구더러 가거라 오거라, 어어, 아니꼬워.”
노파가 최씨의 세줄만 믿고 함상인을 터진 꽈리만치도 못 알고 훌뿌릴 대로 훌뿌려 인사 도리가 조금도 없이,
“늙은 사람더러 아니꼽다고? 초상 상제가 부정하지 안하면 무엇이 부정한고? 양반은 법도 없나? 큰댁에서 자손이 없어 기우를 한다면 들어오라고 하신대도 도로 가실 터인데, 들어오시지 말라는데 부득부득 우기실 것이 무엇인고? 생각대로 합시오구려. 우리게 상관이 있습니까?”
다시는 말해 볼 새 없이 안으로 들어가니, 함상인이 본래 성미가 괄괄한 터에 그 구박을 당하매 어찌 기가 막히지 아니하리요. 자기 종씨를 들어가보고 가슴에 서려 담아 두었던 책망도 절절이 하고, 노파의 분풀이도 시원하게 하려 들었더니, 입 쩍 한마디 해볼 새 없이 최씨의 악쓰는 소리를 듣고 설움이 북받쳐 올라오니, 이는 상제 몸이 되어 망극한 생각이 새로이 나는 것도 아니요, 자기가 박대를 받아 원통코 분해서 그리하는 것도 아니라.
수십 대 상전하여 오던 대종가가 최씨 수중에 망하는 일이 지원절통(至寃絶痛)하여 인사여부 할 새 없이 마룻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대성통곡을 드러내어 놓은 것이라.
한참을 울다가 최씨의 포달 부리는 것을 듣고 분나는 대로 하면 다갱이가 깨지도록 적벽대전(赤壁大戰)이라도 할 터이나, 차마 수숙간 체통을 아니볼 수 없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그 사촌의 만불근리하게 꾸짖는 말을 듣더니 최씨에게 할 말까지 한데 얼뜨려 말대답이 나온다.
“형님 마음이 변하셨소, 본래 그러시오? 내 아버지는 형님의 작은아버지시요, 형님 아버지는 내 큰아버지신데, 내 아버지 돌아가신데 졸곡이 다 지나도록 영연일곡(靈筵一哭)을 안 하오? 큰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에는 내가 철몰랐소마는, 만일 지금같이 장성하여서 현영을 안 하게 되면 형님 생각에 매우 잘한다 하실 터이오? 기도는 무슨 기도요? 기도를 하면 인사 도리도 없소? 펄쩍 기도 잘하는 집 잘되는 것 못 보았소.”
함진해는 양심이 과히 없던 사람은 아니라, 손아래 사촌일지언정 바른말을 하니 무엇이라 대답할 말 없이 못 들은 체하고 있는데 최씨가 혀를 툭툭 차고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남편을 흘겨보며,
“에, 무능도 하오. 손아래 사람이 저 모양으로 할 말, 못 할 말 함부로 해도 꾸지람 한마디 못 하고 무슨 큰 죄나 지었소? 아니 할 말로 죽을 죄를 지었더라도 형은 형이지.”
하며 영창문을 메어 붙이고 마주 나오더니,
“여보 상제님, 무엇을 잘못했다고 수죄를 하러 오셨소? 상제님은 삼사형제씩 아들을 두었으니까 시들한가 보오마는 우리는 자식이 없으니까 아니날 생각이 없어 기도를 하오. 무슨 기도인지 시원히 좀 아시려오? 왜 우리가 기도를 하여서 당신의 층층이 자라는 아들 장가를 못 들이겠소? 사내 양반이 악담은 어따 대고 하오?”
“내가 누구더러 악담을 했더란 말씀이오? 그렇게 하시지를 말으십시오, 아무리 분정지도에 하시는 말씀이라도.”
“그러면 악담이 아니고 덕담이오? 번연히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기도하는 집 잘되는 것 못 보았다구? 잘되지 못 하면 망한다는 말이구려? 사촌도 이만저만이지, 누대봉사(累代奉祀)하는 종가 사촌인데, 종가가 망하면 무슨 차례 갈 것이나 있을 줄 아나 보구려. 망해도 내 집 나 망하는 것을 걱정할것 없이 당신네 집이나 어서 흥해 보시오. 빈말이나 참말이나 종손 낳기를 빈다 하니, 없는 정성이 남과 같이 들이지는 못할지언정 중단자락을 휘두르고 훼방을 노러 오셨소?”
이 모양으로 함상인이 미처 대답할 새 없이 물 퍼붓듯 하더니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 들입다 울어 내니, 편협하고 배우지 못한 부인네가 마음에 맞지 아니한 일이 있으면 제 독살을 못 이기어 쪽쪽 울기는 흔히 하는 버릇이지마는, 최씨는 능청 한 가지를 가입하여, 자기 남편이 감동하도록 하느라고 갖은 사설을 하여 가며 자탄가(自嘆歌)로 울더라.
“팔자를 어떻게 못 타고 나서 이 모양인가! 으으으. 떡두꺼비 같은 자식을 잡아먹고 청승궂게 살아 있어서, 어어어. 눈먼 자식이라도 하나 점지하실까 하고 정성을 들여 보쟀더니, 이이이. 무슨 대천지 원수로 그것조차 방망이를 드누, 으으으. 인제는 사촌도 다 알아보고 대소가도 다 알아보았소, 어어어. 우리 만득이도 저 모양으로 총부리들을 대어서 죽었지, 이이이이.”
치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사설하는 최씨보다 곁에서 그만 그치라고 권하는 노파가 더 가통하다.
“마님 마님, 그치십시오. 분하고 원통하시면 어쩌십니까, 남도 아니시고 집안간이신데. 그리하시는 양반이 그르시지. 당하신 마님이야 잘못하시는 것이 무엇 계십니까? 마님 마님, 그만 그치십시오.”
하더니 가장 사리를 저 혼자 아는 체하고 마루로 나와 함상인을 보고,
“사랑으로 나아가십시오. 점점 마님 분만 돋우지 말으시고, 재하자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이랍니다. 상제님 잘하신 것도 없지마는, 아무리 잘하셨기로 형수마님이 저렇게 하시는데 어찌하십니까? 마님 말씀이 한마디도 틀리신 것이 없습니다. 어서어서 나아가십시오.”
일청이가 울던 눈을 딱 걷어붙이고 대청 들보가 뜰뜰 울리게 소리를 질러,
“어, 아니꼬워! 그 꼴은 더 못 보겠구. 늙은것이 안잠을 자러 돌아단기면 마음을 올곧게 먹어 주인집이 잘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요사스러운 말은 모두 지어내어 남의 집을 결딴을 내려고, 무엇이 어쩌고 어찌해? 마님 분돋움을 내가 해? 재하자는 유구무언이야? 이를테면 나의 행실을 가르치는 모양인가? 한 매에 죽이고도 죄가 남을 것 같으니.”
함상인이 쓰레발 같은 짚신을 집어 부시럭부시럭 신으며,
“형님, 나는 가오. 인제 가면 어느 때 또 뵈러 올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이 나오니, 잘잘못은 고사하고 가깝지 아니한 길에 올라온 사촌이니, 아무라도 하루를 묵어 가라든지, 그렇지 못하면 밥이라도 먹고 가라할 터인데, 무안해 그렇든지 얘기가 질려 그렇든지 함진해는 달다 쓰다 말이 도무지 없이 내어 밀어 보지도 아니하고 있더라.
사람의 집 재산은 물레바퀴같이 빙빙 돌아다니는 것이라. 이 집에 없어지면 저 집에 생기고, 저 집에 없어지면 이 집에 생겨서 있다가 없어지기도 쉽고, 없다가 있기도 쉬워 변화·번복을 이루 측량하기 어려운 것이라.
함씨의 집안 대청에 금방울 소리가 딸랑딸랑 한차례 난 이후로 몇 사람은 못살게 되고 몇 사람은 생수가 났는데, 그 서슬에 해토머리에 눈 사라지듯 없어져 가는 것은 함진해의 재산이라.
못살게 된 사람은 누구누구인고 하니, 첫째는 함상인이니, 함상인이 그 모양으로 다녀간 후로 최씨의 미워하는 마음이 대천지 원수보다 못지 아니하여, 자기 남편에게 없는 말 있는 말을 하려 들어, 저의 부친 유언으로 해마다 주던 돈 몇천 냥, 벼 기십 석을 다시는 주지 아니할 뿐더러, 진위 땅에 있던 농막(農幕)까지 다른 곳으로 이매하여 농사도 지어 먹지 못하게 하니, 신꼴망태 쏟아 놓은 것 같은 층층이 자라는 자녀들은 모두 밥주머니요, 다산한 부인의 벌통 같은 뱃속은 쓴것·단것을 물론하고 들여라 들여라 하는데, 졸지에 생맥이 뚝 끊어지니, 성품은 남보다 급한 함상인이 어찌 기가 막히지 아니하리요.
열 번 죽어도 자기 사촌의 집에는 다시 발길 들여 놓기가 싫어 허리띠를 바싹바싹 졸라매어 가며 지직닢도 매고 짚신 켤레도 삼아, 쌀되 · 나뭇짐을 주변하여 하루 한때 죽물을 흐려 가고, 둘째는 박유모니, 박유모는 함진해 돌 전부터 젖을 먹여 길러 낸 공으로 그 이웃에다 집을 장만해 주고 일동일정을 대어 주니 나이 육십여 세가 되도록 걱정 없이 지내니, 남들이 말하기를,
함진해는 박유모의 젖이 아니면 살지 못하였을 것이요, 박유모는 함진해의 시량(柴糧)이 아니면 살지 못하겠으니, 천지간 보복지리가 신통하다고들 하더니, 신통이 변하여 절통이 되느라고 함상인이 최씨에게 구박을 받고 쫓겨나올 때에 늙은 마음에 너무 가엾어서 자기 집으로 청해 들여 좋은 말로 위로하고 장국 한 상을 대접하여 보냈더니,
박유모의 바른말이 듣기 싫어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탕 놓아 죽이고 싶어하는 안잠 마누라가 그 일을 알고 증연부익을 하여 무엇이라고 얽어 넘겼던지 하루라도 아니 오면 하인을 보내 불러다 보고, 감기나 체증으로 조금만 편치 않다면 몸소 가서 문병하던 함진해가, 별안간에 괘씸하니 괴악하니 하는 무정지책으로 눈앞에 뵈지 말라 일절 거절하고, 다시는 나무 한 가지 양식 한 움큼 대어 주지 아니하니, 남의 농사는 잘 짓고 내 농사는 잘못하듯, 함진해는 잘 길러 주면서 자기 자식은 기르지 못할 근력 없는 소경 늙은이가 끈떨어진 뒤웅이 모양으로 삼척 냉돌에 뱃가죽이 등뒤에 가 붙어, 오늘 내일간 어서 죽기만 기다리고 있더라.
그러면 생수난 사람들은 누구들인고 하니, 첫째는 금방울이라. 베전 병문에서 회오리바람에 함진해 갓 벗겨지는것을 넌짓 보고 그 눈에 뜨이지 아니하려고 행랑 뒷골로 돌아온 후로 어쩌면 함씨 집 쇠를 먹어 볼꼬 하다가, 대묘골 무당의 인도로 함씨 집에를 다니며 앙큼하고 알랑스러운 수단으로 그날부터 회오리바람을 두고두고 쇠옹두리 우리듯 하여 먹는데 별별 기묘한 방법이 다 있어, 삼국시절 적벽강 싸움에 방덕 선생이 조조를 속여 연환계로 팔십만 대군을 깨치듯 금방울은 함씨 내외를 속여 정탐 수단으로 누거만(累巨萬) 재산을 탈취하는데, 그 내외의 웃고 찡그리는 것까지 전보를 놓은 듯이 금방울의 귀에 들어오면, 금방울은 귀신이 집어 대는 듯이 일호(一毫) 차착(差錯) 없이 말을 번번이 하니,
함진해는 쥐에게 파먹히는 닭 모양으로 오장을 빼어 가도 알지 못하고,영하니 신통하니 하여 가며 자기 정신을 자기들이 차리지 못할 만치 되었는데, 제일 큰 문제는 아들 비는 일이라. 돈을 쳐들이고 쌀을 퍼주어 가며 보름 기도니, 한 달 기도니 하여 이웃집에서 닭 한 마리만 잡아먹고 누가 손가락 하나만 베도 부정이 들어 효험이 없겠다 하고 번번이 다시 시작을 시키다가, 다시는 핑계 될 말은 없고 기도만 마치면 태기 있기를 날마다 기다릴 것이요, 태기가 요행 있으면 좋으려니와, 만일 없고 보면 헛일을 했느니, 영치 않으니 하여 본색이 탄로될 터이니 무엇으로 탈을 잡을꼬 하고 별궁리를 모두 하다가 함상인 다녀간 소식을 듣더니, 얼씨구 좋다 하고 상문부정을 연해 쳐들어 살풀이를 해도 여간해서는 아무 일도 아니 되겠다 칭탁하고, 또 한차례를 빼앗아 먹는데,
함씨의 집 광 속 뒤주 속에 있는 오곡백곡은 제 양식이나 다름없고, 함씨의 집 장 속 반닫이 속에 있는 능라금수(綾羅錦繡)는 제 의복이나 다름없으며, 그 지차에는 노파 · 삼랑 등이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살판이 났는데, 최씨 부인 앞에서는 질고 갠 날 없이 양반의 일 하느라고 죽을 힘을 다 들이는 체하여 특별 행하가 물 퍼붓듯 나오도록 낚아 내고, 금방울에게는 우리가 아니면 네 일이 아니 되리라고 생색과공치사를 연해 하여 열에 두셋씩은 으레 떼어먹어 행랑방 구석으로 돌아다니던 것들이 뒷구멍으로 집과 세간을 제각기 떡 벌어지게 장만했더라. 말많은 집안의 장맛이 쓰다고, 구기 몹시 하고 무당 좋아하는 집안은 우환질고(憂患疾苦)가 으레 떠나지 아니하는 이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