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때가 맞느라고 하루 빤한 날 없이 잔병치레로 유명한 만득이가 경 읽은 이후로는 안질 한 번 안 앓고 잘 자라니, 최씨 마음에 정장님은 천신만 싶어 만득의 먹고 입는 일동일정을 모두 그 지휘하는 대로 남의 집 음식도 아니 먹이고, 색다른 천 끝도 아니 입혀, 본래 구기(拘忌)가 한 바리에 실을 짝이 없던 터에 얼마쯤 가입을 하였는데 그 명목이 썩 많으니,

세간 놓는 데 손보기
음식 보면 고수레하기
새 그릇 사면 쑥으로 뜨기
쥐구멍을 막아도 토왕(土王) 보기
닭을 잡아도 터주에 빌기
까마귀만 울어도 살풀이하기
족제비만 나와도 고사 지내기

이와 같이 제반 악징을 다 부리는데 정안수 그릇은 장독대에 떠날 때가 없고, 공양미 쌀박은 어느 산에 아니 가는 곳이 없으며, 심지어 대소가(大小家) 사이에 상변(喪變)이 있으면 백 일씩 통치 아니하기는 예사로 하더라.

우리나라에 의학이 발달 못 되어 비명(非命)에 죽는 병이 여러 가지로되 제일 무서운 병은 천연두(天然痘)라. 사람마다 으레 면하지 못하고 한 번씩은 겪어 고운 얼굴이 찍어매기도 하며, 눈이나 귀에 병신도 되고, 종신지질(終身之疾) 해소도 얻을 뿐더러, 열에 다섯은 살지를 못하는 고로 속담에 ‘역질 아니한 자식은 자식으로 믿지 말라’는 말까지 있은즉, 그 위험함이 다시 비할 데 없더니, 서양 의학자가 발명한 우두법(牛痘法)을 배워 온 후로 천연두를 예방하여 인력으로 능히 위태함을 모면하게 되었건마는, 누가 만득이도 우두를 넣어 주라 권하는 자 있으면 최씨는 열·스무 길 뛰며 손을 홰홰 내어젓고,

“우리집에 와서 그대 말 하지도 마오. 우두라 하는 것이 다 무엇인가? 그까짓 것으로 호구별성(戶口別星)을 못 오시게 하겠군. 우두 한 아이들이 역질(疫疾)을 하면 별성 박대한 벌역으로 더구나 중하게 한답디다. 나는 아무 때든지 마마께서 우리 만득에게 전좌하시면 손발 정히 씻고 정성을 지극하게 들이어서 열사흘이 되거든 장안에 한골 나가는 만신을 청하고, 입담 좋은 마부나 불러 삼현육각(三絃六角)에 배송(拜送) 한 번을 쩍지게 내어 볼 터이오. 우리가 형세가 없소? 기구가 모자라오?”

하며 사람마다 올까 봐 겁이 나고 피해 가는 역질을, 어서 오기를 눈이 감도록 고대하더니, 함씨의 집안이 결딴이 나려는지 최씨의 소원이 성취가 되려는지 별안간에 만득의 전신이 부집 달 듯하며 정신을 모르고 앓는데 뽀얀 물 한 술 아니 먹고 늘어졌으니, 외눈의 부처같이 그 아들을 애지중지하는 함진해가 오죽하리요. 김주부를 청하여라, 오별제를 불러라 하여 맥도 보이고 화제도 내어, 연방 약을 지어다 어서 달여 먹이라 당부를 하니, 함진해 듣고 보는 데는 상하노소(上下老少) 물론하고 분주히 약을 쉴새없이 달이는 체하다가, 함진해만 사랑으로 나가면 그 약은 간다 보아라 하고 귀신 노래만 부르는데, 그렁저렁 삼 일이 지나더니, 녹두 같은 천연두가 자두지족(自頭至足)에 빈틈없이 발반(發斑)이 되었는데, 붉은 반은 조금도 없고 배꽃이겨 붙인 듯하더니, 팔구 일이 되면서 먹장 갈아 끼얹은 듯이 흑함(黑陷)이 되며 숨결이 턱에 닿았더라. 역질이라는 병은 다른 병과 달라, 증세를 보아 가며 약 한 첩에 죽을 것이 사는 수도 있고, 중한 것이 경해도 질 터 이어늘, 최씨는 약은 비상(砒霜)국만치 여기고 밤낮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 동의 정안수 뿐이니 이는 자식을 아편이나 양잿물을 타 먹이지 아니하였다 뿐이지, 그 죽도록 한 일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불쌍한 만득이가 지각 없는 어미를 만나 필경 세상을 버렸더라. 아무라도 자식 죽어 설워 아니할 이는 없으려니와 최씨는 설움이 나도 썩 수선스럽게 배포를 차리는데,

“그것이 그 모양으로 덧없이 죽을 줄이야 어찌 알아…… 인간은 몰라도 무슨 부정이 들었던 것이지…… 허구한 날 눈에 밟혀 어찌 사나…… 한이나 없게 큰 굿을 해보았더면 좋을걸. 영감이 하도 고집을 하니까 마음에 있는 노릇을 해볼 수나 있어야지…… 제가 좋은 곳으로나 가게 용산 나아가서 지 노귀새남이나 하여 주어야…….”

그 다음에는 목을 놓아 울어 대는데 노파는 덩달아 울며,

“마님, 그만 그치십시오. 암만 우시면 한번 길이 달라졌는데 다시 살아옵니까? 마님 말과 같이 새남이나 하여 저승길이나 열어 주시지. 그렇지만 마마에 간 아이는 진배송을 내어야 이 다음에 낳는 자손도 길하답니다.”

“자네 말이 옳은 말일세. 나도 번연히 알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네그려. 여보게, 우리 단골더러 진배송을 한번 좀 잘 내달라고 불러주게. 영감도 생각이 계시겠지. 고집 세우다 일을 저질러 놓고 또 무엇이라 하시겠나? 내가 죽더라도 하고 말 터이니 그 염려는 말고 어서 가보게.”

노파가 살판이나 만난 듯이 겅둥겅둥 뛰어 대묘골 모퉁이로 감돌아들더니 조그마한 평대문집으로 서슴지 아니하고 들어가며,

“만신 계십니까? 만신 계셔요?”

안방문이 펄덕 열리며 얼굴에 아양이 다락다락하는 여인이 끼웃이 내어다 보며,

“이게 누구시오? 어서 오시오.”

하며 손목을 다정히 끌고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그 댁 아기가 구태나 멀리 갔다구려. 나는 벌써부터 그럴 줄 알면서도 박절히 바로 말을 못 했소. 그래, 어찌해 오셨소? 자리걷이를 하신다고 나를 불러오라십드니이까?”

“자리걷이가 아니라 진배송을 내신다고 제구를 다 차려 가지고 내일로 오시라고 하십디다.”

하며 앞뒤를 끼웃끼웃 둘러보며,

“누구 들을 사람이나 없소?”

“아무도 없소. 걱정 말고 세상 없는 말이라도 다 하시오.”

“만신…… 지금 세상에 상전의 빨래를 해도 발뒤꿈치가 희다 하는데, 이런 판에 좀 먹지 못하고 어느 때 먹소? 나 하라는 대로만 다 하고 보면 전천이나 잘 떼어먹을 터이오.”

“아무렴, 먹는 것은 어디로 갔든지 마누라님 지휘를 내가 아니 들으며, 또 돈이 생기기로 내가 마누라님을 모르는 체하겠소? 그대 말은 하나마나 무슨 일이오? 이야기나 하시구려.”

노파가 앞으로 다가앉으며 만득이 병중에 하던 말과 찾던 것을 낱낱이 형용하여 이르고 무어라 무어라 한동안 지껄이더니,

“꼭 되지 아니했소? 그렇게만 하고 보면 세상 없는 사람도 깜짝 반하지.”

“아니 될 말이오. 그 모양으로 어설프게 해서 큰 돈을 먹어 보겠소? 별말 말고 내 말대로 합시다.”

“아무렇게 하든지 일만 잘하구려.”

“내야 사흘이 멀다 하고 그 댁에를 북 드나들듯 하였으니 세상 없이 영절스러운 말을 하기로 누가 믿겠소? 마누라님도 아마 아실걸. 저 국수당 아래 있는 김씨 만신이 배송 잘 내기로 소문나지 아니했소? 지금으로 내가 그 만신을 가보고 전후 부탁을 단단히 할 것이니 마누라님은 댁으로 가서 마님을 뵈옵고 곧이들으시도록 꾸며 대구려.”

“옳소, 그것 참 되었소. 그 만신 소문을 우리 마님도 들으시고 그러지 아니해도 일상 한번 불러 보시든지 가보신다고 하시면서도 혹 단골이 노여워하면 어찌하리 하시고 계신 터인데, 당신이 천거하더라고 여쭙기만 하면 얼마쯤 좋아하실 것이오. 마님께서 기다리실 터이니까 나는 어서 가야 하겠소. 김만신 집에를 즉시 가보시오.”

하고 두어 걸음 나아가다가 다시 돌아서며,

“김씨 만신이 좋기는 하오마는, 나와는 생소하니 다 알아서 부탁하여 주시오.”

“그만만 해도 다 알아듣소. 염려 말고 어서 가시오.”

이 모양으로 별순검(別巡檢) 변쓰듯 끝만 따 수작을 하고 노파의 마음이 든든하여 집으로 돌아오더니 최씨를 보고 언구럭을 피우는데,

“마님, 다녀왔습니다. 아마 대단히 기다리셨을 것이오. 얼른 다녀온다는 것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늙은 사람 행보가 자연 그렇지. 그에서 더 속히 올 수 있나? 그래, 단골더러 내일 오라고 일렀나?”

“단골이 오는 것이 다 무엇입시오? 제가 앓아서 거진 죽게 되었는데요.”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마님, 일상 말씀하시던 국수당 만신이 하도 소문이 났기에 지금 가서 내일로 일을 맞추고 왔습니다.”

“국수당 만신이라니, 금방울 말인가?”

“네네, 금방울이올시다.”

금방울의 별호 해제를 들으면 요절 아니할 사람이 없으니, 얼굴이 누르퉁퉁하여 금빛 같다고 금이라 한 것도 아니요, 키가 작아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것이 방울 같다고 방울이라 한 것도 아니라. 그 무당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이 길흉간 쇠소리가 나게 맞는다고 소리나는 쇠로 별호를 지을 터인데 쇠에 소리나는 것이 하고 많지마는 종로 인경이라 하자니 너무 투미하고, 징이나 꽹과리라 하자니 너무 상스러워, 아담하고 어여쁜 방울이라 하였는데, 방울 중에도 납방울·시우쇠방울·은방울 여러 가지 방울이 있으되, 썩 상등으로 대접하느라고 금방울이라 하였으니, 금이라는 것은 쇠 중에 일등 될 뿐 아니라 그 무당의 성이 김가니, 김은 즉 금이라고 이뜻 저뜻 모두 취하여 금방울이라 하였더라.

금방울의 소문이 어떻게 났던지 남북촌 굵직굵직한 집에서 단골 아니 정한 집이 없어, 한 달 삼십 일, 하루 열두 시, 어느 날 어느 때에 두 군데 세 군데 으레 부르러 와, 몸뚱이가 종잇장 같으면 이리저리 찢어지고 말았을 터이러라. 원래 무당이라 하는 것은 보기 좋게 춤이나 잘 추고 목청 좋게 소리나 잘 하고 수다스럽게 지껄이기나 잘 하면 명예를 절로 얻어 예 간다 제 간다 하는 법인데, 금방울이는 한때 해먹고 살라고 하느님이 점지해 내셨던지 그 여러 가지에 한 가지 남의 밑에 아니 들 뿐더러 남의 눈치 잘 채우고, 남의 말 넘겨짚기 잘 하고, 아양·능청 온갖 재주를 구비하였는데, 함진해 마누라의 무당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어떻게 하면 한번 어울려들어 그 집 세간을 훌쭉하도록 빨아먹을꼬 하고 아라사 피득 황제가 동양 제국을 경영하듯 하던 차에, 함진해 집에서 부른다는 말을 듣고 다른 볼일을 다 제쳐 놓고 다방골로 내려와 함씨 집 안방으로 들어오며 첫대 앙큼스러운 거짓말 한 번을 내어놓는데, 최씨는 아들 참척(慘慽)을 보고 설우니 원통하니 하는 중에도 금방울의 말이 어떻게 재미가 있는지 오줌을 잘곰잘곰 쌀 지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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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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