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형장이시어! 형장의 처지를 생각하시옵소서. 형장은 우리 일문 중 십여 대 종손이시니 큰집의 동량이나 일반이라. 그 동량이 썩어지면 큰집이 무너짐은 면치 못할 사세라. 형장의 미혹하심은 전일에 올린 바 글에 누누이 말씀하였으니 다시 논란할 바 없거니와, 날로 들리는 소식이 더욱 놀랍고 원통하와 이같이 다시 말씀하나니다.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며, 악한 무리를 멀리함은 성인(聖人)의 훈계요, 공을 상 주고 죄를 벌함은 가법(家法)의 정당함이어늘, 이제 형장은 이와 같이 아니하여 무육하던 유모의 공을 저버려 그 착함을 모르시고, 간휼한 할미의 죄를 깨닫지 못하여 그 악함을 친신하시니 어찌 가도(家道)가 쇠색함을 면하오며, 또 산지라 하는 것은 조상의 백골로 하여금 풍우에 폭로치 아니하고 땅 속에 깊이 편안히 계시게 함이 도리에 온당함이어늘, 풍수의 무거한 말을 곧이듣고 자기의 영귀(榮貴)와 자손의 복록(福祿)을 희망하여 안장한 백골을 파가지고 대지명당을 찾아다니니 대지명당이 어디 있으며, 조상의 백골이 어찌 자손의 영귀와 복록을 얻어 주리요? 만일 그와 같은 이치가 있을진대, 아무 데나 매장지를 한곳에 정하고 백골을 단취하는 서양 사람은 모두 멸종(滅種) 빈한하겠거늘, 오늘날 그 번식·부강함이 산지로 종사하는 우리나라에 비할 바 아님은 어쩐 연고이며, 만일 지관이라 하는 자가 대지명당을 능히 알아, 남에게 가르칠 재주가 있고 보면, 어찌하여 저의 할아비를 묻지 아니하고 그같이 빈곤히 지냄을 면치 못하여 타인만 가르쳐 주리요? 이는 허탄한 말을 주작하여 남의 재물을 도적함이어늘, 어찌 이같이 고혹하사 산소를 차례로 면례코자 하시나니까? 종제의 위인이 불초하므로 말을 버리지 마시고 급히 깨달으사, 유모를 도로 부르시고 할미를 축출하며 지관을 거절하사 면례를 파의하압소서.

그 끝에 열 가지 잠언(箴言)을 기록하였으되,

일, 쓸데 있는 글을 많이 읽고 무익한 일을 짓지 말으소서.

이, 사람 구원하기는 의원만한 이 없고, 세상을 혹게 하기는 무녀 같은 것이 없나이다.

삼, 사람을 사귀매 양증 있는 자를 취하고 음증 있는 자를 취치 마옵소서.

사, 광명한 세계에는 다만 실상만 있고 허황한 지경은 없사외다.

오, 세계에 신선이 있으면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가 가히 죽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육, 사람을 능히 섬기지 못하거든 어찌 능히 귀신을 섬기며, 산 사람도모르며, 어찌 능히 죽은 자를 알리요? 귀신과 죽음은 성인의 말씀치 아니한 바니, 성인이 아니하신 말을 내가 지어내면 성인을 배반함이니다.

칠, 굿하고 경 읽음을, 자기는 당연한 놀이마당으로 여겨도, 지식 있는 사람 보기에는 혼암세계로 아나이다.

구, 산을 뚫고 길 내기를 풍수에 구애가 될지면, 외국에는 철도가 낙역하고 광산이 허다하건만, 어찌하여 국세(國勢)가 저같이 흥왕하뇨? 풍수가 어찌 동양에는 행하고 서양에는 행치 아니하오리까?

십, 사람의 품은 마음을 가히 측량키 어려워 얼굴과는 관계가 없거늘, 상을 보고 마음을 안다 하니, 진실로 술사(術師)의 사람 속이는 말이니다.

보기를 다하매 그 많은 일가들이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는데, 그 중에 그 편지 가져오라던 노인 함만호는 진해 집 이웃에 있어, 그 집의 국이 끓고 장이 끓는 것을 모를 것이 없이 다 아는 터인데, 진해의 하는 일이 마음에 해괴하건마는, 아무리 일가간이기로 소불간친(疏不間親)으로 내외간사를 말하기 어려워서, 다만 대체로 한두 번 권고한 후 다시는 개구도 아니하고 이따금 가서, 진해의 망측한 거동만 구경하더니, 어리석은 진해는 일문 대소가(一門大小家)들이 다 절적(絶跡)을 하는데, 이 노인은 가장 자기를 친절히 여겨 종종 찾아오거니 하여,

“만호 아저씨, 만호 아저씨”

하며 일청의 편지 올 적마다 펴보이며,

“이놈이, 소위 형은 갱참(坑塹)에 집어넣어 그른 사람으로 돌리고, 저는 지식이 고명(高明)한 정대(正大)한 사람인 체하여 이따위 편지를 하나니마나니.”

하고 찢어 내어 버리는 것을, 함만호는 뜻이 깊은 사람이라 속마음으로,

‘종형제간에 어쩌면 저같이 청탁(淸濁)이 현수(懸殊)한고? 대순(大舜)과 상(象)이도 있고, 도척(盜拓)이와 유하혜(柳下惠)도 있다 하지마는, 저 사람이야말로 상이와 도척이보다 못지 아니하도다. 내가 저 편지를 간수하여 두었다, 이 다음에 일청의 발명거리를 삼으리라.’

하고 슬며시 주섬주섬 집어 모아, 이리저리 이에를 맞추어, 튼튼한 종이로 배접을 하여 두었던 것이라. 이번 종회를 발기하기도 함만호가 문장(門長)을 일부러 여러 번 가보고 통문을 놓은 것인데, 그 종회(宗會)한 주지(主旨)는 큰 조목(條目) 세 가지가 있으니,

제일은, 진해의 양자(養子)를 일청의 아들로 정하여 누대 종통(宗統)을 잇고자 함이요,

제이는, 진해의 그르고 일청의 바름을 종중에 공포하여 선악의 사실을 포폄(褒貶)코자 함이요,

제삼은, 형제의 불목함을 없게 하여 문내에 화기가 다시 생기게 하고자 함이라.

그날 함진해는 자기 일로 종회한다는 말을 듣고 여러 일가 보기에 얼굴이 뜨뜻하여 내환으로 의원을 보러 간다 청탁하고 안잠 할미의 집을 치우고 들어앉아 연해 소식만 탐지하더니, 처음에 자기 사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문장이 호령하더란 말을 듣고, 무슨 원수가 그다지 깊던지 마음에 시원 상쾌하다가, 만호가 편지 뭉치를 내어 놓고 일장 설명하더니, 만좌가 모두 칭찬하더라는 기별을 듣고서는 분함을 견디지 못하여 잔부끄럼은 간다 보아라 하고, 그 길로 바로 자기 사랑으로 들어오며, 문장 이하로 여러 일가에게만 인사를 하고, 마주 나오며 절하는 일청은 본 체도 아니하며 등을 지고 돌아 앉으니, 일청이가 기가 막혀 더운 눈물이 더벅더벅 떨어지며 아무 말 없이 섰으니, 이는 자기 종형을 오래간만에 만나 반가운 눈물도 아니요, 자기 종형의 눈에 나서 원통하여 나오는 눈물도 아니라. 옛말에 ‘오십에 사십구년의 그름을 안다(五十知四十九年之非[오십지사십구년지비])’하였거늘, 자기 종형은 오십이 다 되도록 회개를 그저 못 하였으니 집안일을 다시 바랄 여지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불현듯이 나서 우는 일이러라.

“여보게 진해, 내 말 듣게. 사람의 집안이 화목한 연후에 만사가 성취되는 법이어늘, 자네 연기가 노성한 터에 제가(齊家)를 그같이 불목히 하고 가사가 일패도지(一敗塗地)치 아니하겠나? 옛 성인의 말씀에, ‘독한 약이 입에 괴로우나 병에는 이롭고, 충성된 말이 귀에는 거스르나 행실에는 이롭다’ 하였거늘, 자네는 어찌하여 충성된 말로 간하는 것을 청종치 아니할 뿐외라, 간하는 사촌을 구수(仇讐)같이 여기니 실로 한심한 일이로세.”

“집안의 불목한 것이 저놈의 죄이지, 나는 아무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저놈이 내 집에 절족한 지 우금 몇 해에 우리 아버지·할아버지 산소를 차례로 면례를 하여도 제 집에 자빠져 현영도 아니하고, 집안에 우환이 그렇게 심하여도 어떠냐 말 한마디 물어 본 적 없고, 아니꼽게 편지자로 수죄 비스름하게 논란을 하여 보냈으니, 저 하는 대로 하면 어느 지경까지든지 분풀이를 못 할 바 아니나, 남의 청문(廳聞)을 위하여 참고 참는 나더러 꾸지람을 하시니 너무 원통하오이다.”

“허허, 이 사람, 가위 고집불통일세. 저 사람이 자네를 미워서 간하는 말과 편지를 하였겠나? 아무쪼록 자네가 잡류배(雜類輩) 꼬임에 빠지지 말고 가도를 바르게 하도록 함이어늘, 자네는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구축하며 미워하였으니, 자네가 잘못이지 무엇인고?”

함진해가 다시 개구할 겨를이 없이, 당초에 그 삼촌 돌아가서 삼 년이 지나도록 영영 일곡도 아니한 일로부터, 일청 온 것을 부정하다고 구축하여 쫓던 일과 일청의 일반 병작도 못 해먹게 전답 팔아 가던 일과, 무육한 유모를 일청이 밥 먹였다고 박대하며, 요사한 무당년을 소개하여 제반 악증을 다하던 노파를 신임한 일까지, 임가의 허황한 말에 속고 조상의 백골을 천동한 일까지, 조목조목 수죄를 한 후, 일청의 편지를 내어 놓고 구절마다 들어 타이르고, 설명을 어찌 감동할 만치 하였던지, 진해가 처음에는 일일이 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반대하던 위인이라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듣다가 자취 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며 한숨만 자초아 쉬더라.

문장이 종회의 처리할 사건을 차례로 가부표(可否票)를 받아 종다수(從多數) 취결하는데,

“우리 문중 제일 소중한 바는 종통인데, 지금 진해의 연기는 오십지년이 되었으며 종부의 연기는 아직 단산지경은 아니나, 그러나 다년 중병에 반신불수가 되어 다시 생산할 여망이 없은즉, 불가불 입후(立後)를 하여야 누대향화를 그치지 아니할 터인데, 당내에 항렬 닿는 아이가 없으면 원근족을 불계하고 지취 동성(同性)으로 아무 일가의 자식이고 소목만 맞으면 데려오겠지만, 진해의 사촌, 일청의 맏아들 종표가 비단 당내만 될 뿐 아니라 위인이 준수하니, 부재다언(不在多言)하고 그 아이로 정하는 것이 어떠한고?”

여러 일가가 일시에 한마디 말로,

“가하오이다.”

문장이 또 한 문제를 제출하되,

“지금 진해의 연기는 과히 늙지는 아니하였으나, 다년 포병으로 가위 정신 상실자라 할 만한즉, 도저히 가사를 처리할 수 없고, 데려올종표는 아직 미성년한 아이인즉, 불가불 뒤보아 주는 사람(後見人[후견인])이 있어야, 패한 가세를 회복기는 이 다음 일이어니와, 목전의 봉제사(奉祭祀) · 접빈객(接賓客)을 할 터인즉, 그 자격에 합당한 사람 하나를 천거하시오.”

이때에 함만호가 썩 나앉으며,

“그 사람은 별로 구할 것 없이, 내 생각에는 일청이 외에는 그 소임을 맡길 사람이 다시 없을 듯하오이다.”

문장이 여러 사람에게 가부를 물으니 또한 일구동성(一口同聲)으로 만호의 말을 찬성하는지라, 문장이 진해를 돌아보며,

“자네는 어제 잘못한 것을 깨달아 이제는 옳게 함을 생각할 뿐더러 일동 일정을 자네 사촌에게 위임하고 불목히 지내지 말아야 가정을 보존할 것이니 아무쪼록 종중 공의(公議)를 위반치 말기를 믿으며, 만일 일향 회개치 아니하고 악인을 가까이하여, 오늘 회의 결정한 일이 헛일이 되면, 그제는 종벌(宗罰)을 크게 당하리니 조심하소.”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About Author

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