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관이 비기를 받아 우두커니 보다가 픽 웃으며,

“그것이 그다지 희한하시오? 나는 별로 아는 것도 없이 맹자직문(盲者直門)으로 우중한 일이지만, 영감 댁 복력이 거룩하여 몇백 년 전에 옥룡전자가 벌써 비결까지 묻었으니, 나 아니기로 댁에서 쓰지 못할 리가 있소? 아무려나, 영감 댁 복력이 대단하시오. 이왕 명혈을 쓰신 끝에 선왕장 산소를 마저 면례하시오.”

“그다뿐이오니이까? 향일에 말씀하시던 비봉귀소형을 마저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정성을 들여 가며 간곡히 물어, 강씨를 사이에 또 놓고 몇십만냥을 주고 샀던지, 급급히 택일을 하여 면례 한 장을 마저 한 뒤에, 임지관이 종적 노출이 되어 오래 유련하지 못하겠다 하고 굳이 말려도 듣지 아니하고 떠나가는지라. 수로금 몇만 금을 경보로 내어놓으니 임지관이 가장 청렴한 체하고 무수히 퇴각하다가 마지못하여 받는 모양으로 짐에 넣더니, 배행(陪行)하러 보내는 하인을 도로 쫓고 정처(定處)와 거주를 물어도 대답이 없이 표연히 가더라.

함진해가 그 후로는 부인의 병세도 차차 낫고, 귀동자를 올 아니면 내년에는 낳을 줄로 태산같이 믿고 기다리더니, 공든 탑이 무너지고, 믿는 나무에 곰이 핀다고, 부인의 병은 더욱 별증(別症)이 생겨, 한 다리 한 팔 못 쓰는 반신불수가 되어 말하는 송장이 되었고, 그 고생을 다 하느라니 함진해는 나이 융로(隆老)한 터는 아니나 근력범절이 칠십 노인이나 다름없이 되었는데, 저 강도와 아귀보다 더한 요악간휼(妖惡奸譎)한 금방울이 그 모양으로 속여먹고도 오히려 부족하던지 한 가지 흉계를 또 부려서 근력 없는 함진해가 수각이 황망한 지경을 당하였더라.

하루는 어떠한 자가 불문곡직하고 주인을 찾으며 들어오더니 시비를 내어 놓으니, 이는 다른 사단이 아니라, 그자가 고양 최씨의 도종손이라 자칭하고 산송을 일으키려는 것이라, 최가의 위인도 똑똑하고 구변도 썩 좋아 함진해는 한 마디쯤 말을 하면, 최가는 열 마디씩 쥐어박아 말을 한다.

“여보, 댁에서는 세력도 좋고, 형세도 부자니까 잔핍한 사람을 업수이 여기고 남의 누대 분묘 내룡견갑(來龍肩甲) 좌립구견지지(坐立俱見之地)에 호기 있게 뫼를 썼나 보오마는, 그 지경을 당한 사람도 오장육부가 다 있소.”

“여보, 댁이 누구시오? 나도 천금 같은 돈을 주고 산주에게 사서 썼소.”

“산주, 산주, 산주가 누구란 말이오?”

“네, 고양 최씨의 종손 되는 옥여 최서방에게 샀소. 댁이 무슨 상관으로 이리하시오?”

“우리 최가에 옥여라고는 당초에 없을 뿐 아니라, 산하에 사는 일가들은 모두 우리집 지파(支派)요, 수십 대 봉사하는 종손은 나의 집인데 십여 년 전에 호중으로 낙향하였다가 금년에야 비로소 성묘를 온 터이오. 댁에서 사지 말고 세상 없는 일을 했더라도 당장 파내고야 배기리다. 댁에서 아니 파면 내 손으로라도 파 굴리고 말 터이니 알아 하시오.”

하고 최씨 집 내력과 파계(派系)를 역력히 말하며 돌서슬같이 으르는 바람에 함진해가 겁이 더럭 나서 좋은 말로 어루만지며 뒷손으로 사람을 급히 보내어 옥여를 찾으니, 벌써 솔가(率家) 도주하여 영향도 없는지라,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정소를 하든지 재판을 하기는 이 다음 일이요, 당장 친산에 사굴을 당할 터이니까 생각다 못하여 하릴없이 산값을 재징으로 물어주더라. 상말로, 파리한 개 무엇 베고 무엇 베니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일체로 패해 가는 세간을 이리 빼앗기고 저리 빼앗기고 나니, 남는 것이라고는 새앙쥐 볼가심할 것도 없게 되어, 그렇지 아니하게 먹고 입고 지내던 함진해가 삼순구식(三旬九食)을 못 면하고 누대 제사에 궐향(闕享)을 번번이 하니, 타성들이 듣고 보아도 그 집안 그 지경 된 것을 가이없으니, 그래 싸니, 다만 한마디씩이라도 흉볼 겸, 걱정할 겸 하거든, 하물며 원근족(遠近族) 함씨의 종중에서야 수십 대 종가가 결딴이 났으니 어찌 남의 일보듯 하고 있으리요. 팔도 함씨 대종회(大宗會)를 열고 관자수대로 모여드는데, 이때 함일청이는 그 사촌의 집에를 일절 발을 끊어 다시 현영을 아니하고 다만 치산을 알뜰히 하여 형세도 점점 나아지고, 아들 삼형제를 열심으로 가르쳐 남부러워 아니하고 지내는 터이나, 다만 마음에 계련되어 잊히지 못하는 바는 경성 큰집 일이라, 자기는 아니 갈 법해도 서울 인편 곧 있으면 종종 소식을 탐지한즉, 듣는 말이 다 한심하고 기막힌 일뿐이러니, 하루는 종회하는 통문이 서울에서 내려왔는지라, 곰곰 생각한즉,

‘아무리 사촌이라도 타인보다도 더 미워 다시 대면을 말자 작정을 하였지마는, 팔도 일가가 모두 총회를 하는데 내 도리에 아니 가볼 수 없다.’

하고 그 길로 떠나, 성중을 들어서서 다방골 모퉁이를 돌아드니 해포 그리던 사촌을 만날 터인즉 얼마쯤 반가운 마음이 날 터인데, 반갑기는 고사하고 눈물만 절로 나니, 그 사정을 모르는 사람 보기에는 심상히 여기겠으나 이 사람의 중심에는 여러 가지 철천지한(徹天之恨)이 가득하더라.

‘저기 보이는 집이 우리 사촌의 집이 아닌가? 어쩌면 저 모양으로 동퇴서락이 되었노? 우리 큰아버지 당년이 엊그제 같은데, 그때는 저 집이 분벽사창이 영롱하던, 다동 바닥에 제일 갑제러니! 집이 저 지경이 되었을 제야 그 집안 범절이야 더구나 오죽할까? 에그, 우리 조부께서 머나먼 북경을 문턱 드나들듯 하시며 알뜰살뜰 모으신 세간을 그 형님이 장가 한번을 잘못 들더니 걷잡을 새 없이 저 모양으로 망하였지, 집안에 가까이 단기던 정직한 사람은 모두 거절을 하고, 천하의 교악망측한 연놈들만 집에다 붙이어억지로 결딴이 나도록 심장을 두었으니 무슨 별수로 저 모양이 아니 될꼬. 안잠 하인년이 그저 있는지, 제일 그년 보기 싫어 어찌 들어가노? 에라, 이탓 저탓 해 무엇하리! 대관절 우리 형님이 글러 그렇게 되었지.’

하며 손수건을 내어 눈물 흔적을 씻고 대문을 들어서니 문 위에 엄나무 가시와 좌우 주초 앞에 황토가 여전히 있는지라, 그같이 비창하던 마음이 졸지에 변하여 눈에서 쌍심지가 올라오며 가슴에서 불덩어리가 벌꺽벌꺽 올라온다.

‘이왕 결딴난 집안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이 모양으로 흥와조산(興訛造訕)을 하는 연놈을 깡그리 대매에 때려 죽여 분풀이나 실컷 하겠다. 오, 어떤 연놈이든지 걸려만 들어 보아라. 내 손에 못 배기리라.’

하며 사랑 앞에를 썩 들어서니, 대부·족장·형제·조카·손항 되는 여러 일가 사람들이 가득 모여 앉았다가 분분히 인사를 하는데, 정작 자기 사촌은 볼 수가 없는지라, 마음에 당황하여 좌우를 돌아보고,

“여보, 우리 형님은 어디 가셨길래 아니 계시오?”

그중 항렬 높은 자가 일청을 불러 앞에 세우고 준절히 꾸짖는다.

“네가 그 말 하기가 부끄럽지 아니하냐? 네 사촌이 아무리 지각없이 집안을 결딴내기로 너는 그만 지각이 있는 사람이 종형제간에 절적을 하고, 조상의 제사 참사(參祀)까지 몇 해를 아니하다가, 우리가 이 모양으로 종회를 하니까 그제야 올라와서 무엇이 어찌고 어찌해? 우리 형님이 어디로 가셨어? 주축이 일반이다. 집안이 그 모양으로 불목하고 무슨 일이 되겠느냐?”

그 곁에 앉았던 노인 하나가 분연히 나앉으며,

“여보 형님, 그 말씀 마시오. 그 사람이 무슨 잘못한 일이 있다고 그리하시오? 이것저것이 모두 진해의 잘못이지, 저 사람은 저 할 도리를 다했습니다.”

먼저 말하던 노인이 징을 내며,

“자네는 무엇을 가지고 저 사람의 과실이 없다 하노?”

“형님,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용혹무괴오마는, 내 말씀을 자세 듣고 무정지책(無情之責)을 너무 말으시오.”

하며 소년 일가 하나를 부르더니, 편지 한 뭉치를 가져다가 조좌 중에 내어놓고 축조(逐條)하여 설명을 하는데 그 편지는 별사람의 편지가 아니라, 함일청이 그 종씨의 하는 일마다 소문을 듣고 깨닫도록 인편 곧 있으면 변명을 하여 간곡히 한 편지라. 그 어리석고 미련한 함진해는 그럴수록 자기 사촌을 돈목(敦睦)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편지 올 적마다 큰집이 아니 되도록 훼방을 하거니 여겨 원수치부를 한층씩 더하던 것이라. 그 편지의 연월을 맞춰 차례차례 보아 내려가는데 자자(字字)마다 간절하고 구구(句句)마다 곡진(曲盡)하여 목석이라도 감동할 만하니 최초에 한 편지 사연에 하였으되,

무릇 나라의 진보가 되지 못함은 풍속이 미혹함에 생기나니, 슬프다! 우리 황인종의 지혜도 백인종만 못지 아니하거늘, 어쩌다 오늘날 이같이 조잔 멸망 지경에 이르렀나뇨? 반드시 연고가 있을지니다. 우리 동양으로 말하면 당우 이래로 하늘을 공경하며 귀신에게 제 지냄은 불과 일시에 백성의 뜻을 단속하기 위함이러니, 요괴한 선비들이 오행의 의론을 창설하여 길흉화복을 스스로 부른다 하므로, 재앙과 상서의 허탄한 말이 대치하여 점점 심할수록 요악한 말을 주작한지라. 일로조차 천지 귀신이 주고 빼앗으며, 죽고 사는 권리를 실상으로 조종하여 순히 하면 길하고, 거스르면 흉한 줄로 미혹하여 이에 밝음을 버리고 어두움을 구하며, 사람을 내어 놓고 귀신을 위하여 무녀(巫女)와 판수가 능히 재앙을 사라지게 하고 복을 맞아 오는 줄 여겨, 한 사람, 두 사람으로부터 거세가 본받아, 적게 한 집만 멸망할 뿐 아니라, 크게 나라까지 쇠약게 하나니, 이는 곧 억만 명 황인종의 금일 참혹한 형상을 당한 소이연이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형장은 무식한 자의 미혹하는 상태를 거울하사, 간악·요괴한 무리를 일절 물리치시고, 서양 사람의 실지를 밟아 일절 귀신 등의 요괴한 말을 한 비에 쓸어 버려, 하늘도 가히 측량하며, 바다도 가히 건너며, 산도 가히 뚫으며, 만물도 가히 알며, 백사도 가히 지을 마음을 두시면, 비단 형장의 한 댁만 부지하실 뿐 아니라, 나라도 가히 강케 하며, 동포도 가히 보존하리이다.

그 다음에 보낸 편지에 또 하였으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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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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