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양으로 천둥같이 을러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임지관더러 소경력 풍파를 일일이 이야기한 후 주사야탁(晝思夜度)으로 성화만 하더니, 며칠 아니 되어 어떠한 의표(儀表)도 선명하고 위인도 진걸한 듯한 사람 하나가 찾아 들어와 함진해를 보고 인사를 통한다.
“주인장이 누구시오니이까?”
함진해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네, 내가 주인이오. 웬 양반이신데 무슨 사로 찾아 계시오?”
“네, 나는 고양 읍내 사는 강서방이올시다. 다름아니라 댁에 임생원이라 하시는 양반이 오셔서 유하십니까?”
“네, 그 양반이 계시지요. 어찌하여 찾으시오? 그 양반을 본래 친하시던가요?”
“매우 친좁게 지냅니다.”
“그러면 거기 좀 앉아 기다리시오.”
하고 한달음에 안잠 마누라 집으로 가서 임지관더러 그 말을 전하니, 임씨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괴탄을 무수히 한다.
“응, 긴치 아니한 사람, 또 무엇 하러 여기까지 찾아왔노? 내 행색을 일껏 감추려 하여도 필경은 소문이 또 났으니 여기도 오래 있지 못하겠구.”
함진해를 건너다보며,
“영감 댁 일은 잘될 듯하오. 지금 온 그 사람이 고양 일읍에서는 권도가 매우 좋아서 그만 주선을 할 만합니다. 기왕 온 사람을 어쩔 수 있소? 이리로 부르시오.”
“네, 그리하오리다.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니 말이지, 나는 친산 면례할 일로 어찌 속이 타는지 밤이면 잠을 잘 못 잡니다. 그 사람이 기위 권도가 매우 있다 하오니, 이 말씀 아니기로 어련하실 바는 아니시나, 아무쪼록 되도록 부탁을 하여 주십시오. 산지값은 얼마를 주든지 다과를 교계치 아니합니다.”
“어디 봅시다. 그러나 이런 일을 데면데면히 하다가는 또 이번에 영감이 다녀오신 모양같이 될 것이니 단단히 하시오.”
“내가 아무리 단단히 하고 싶으나 될 수가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하실 탓이지.”
“내야 영감 일에 범연하겠소마는 내 부탁 다르고 영감의 간청 다르지 아니하오? 그 사람도 내 손에 친산을 얻어 쓰고 우연히 없던 아들을 낳은 후로 자기 딴은 감사히 여겨 저 모양으로 찾아오는 터이니까 영감의 사정 말을 부탁 곧 하게 되면 자기 힘 자라는 대로는 하겠으나, 매양 그런 일을 하자면 빈손 들고는 도저히 아니 될 것이니, 그 사람이 가세가 매우 간구하여 일 주선하기가 역시 곤란하리다. 어떻든지 나는 힘껏 할 것이니, 영감이 그 다음 일은 알아서 처치하시오.”
“그는 염려 마십시오. 제 일 제가 하려면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하며 나아가더니 강씨를 인도하여 데리고 오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설만히 수작을 하더니, 별안간 한없이 공근하고 관곡한지라, 강씨가 뒤를 따라오며 혼자말로,
‘옳지, 인저는 네가 착실히 낚시에 걸렸다. 농익은 연감 모양같이 홀쭉하도록 빨려 보아라. 대체 우리 아주머니 모계(謨計)는 초한(楚漢) 때 진평이만은 착실한걸. 국과 장이 맞느라고 임지관은 어디서 그리 마침 생겼던고!’
하고 그대 사색을 싹도 보이지 아니하고 천연스럽게 따라 들어오더니 임지관 앞에 가 절을 코가 깨어지게 한 번 하고 곁으로 비켜서 공손히 꿇어앉으며,
“그 동안 기체 어떠합시오니까?”
“허어, 자네인가? 예를 어찌 알고 찾아왔노? 그래, 댁내가 평안하시고 자제도 잘 자라나? 아마 컸을걸.”
“올해 다섯 살이올시다. 그놈이 기질도 튼튼하고 외양도 똑똑하여 남의 열 자식 불지 아니합니다. 그놈을 볼 때마다 임생원장 덕택은 머리를 베어 신을 삼아도 못다 갚겠다고 저희 내외가 말씀을 합니다.”
“실없은 사람이로세. 자네 댁 복력으로 그런 자손을 두었지, 내 덕이 다 무엇인가? 설혹 자네 말같이 면례를 잘하고 자손을 낳았다 한대도 역시 자네 댁 복력으로 내 말을 곧이들었지, 내 아무리 가르치기로 자네가 믿지 아니하면 되겠나, 허허허…… 여보게, 지나간 일은 쓸데없이 말할 것 없네. 그러지 아니하여도 내가 자네를 좀 보면 하였더니 다행하게 마침 잘 왔네.”
강씨가 생시치미를 뚝 떼고,
“왜 무슨 부탁하실 말씀이 계십니까? 세상 없는 일이기로 임생원장께서 하시는 말씀이야 봉행치 아니하겠습니까?”
“자네 덕은리 근처 사는 최서방들과 친분이 있나?”
“네, 그 근처에 최씨들이 여러 집인데 한 고을에 사는 고로 모두 면분은 있지마는, 그 최씨의 종손 되는 옥여 최서방과는 못 할 말을 다 할 만치 친숙히 지냅니다.”
“옳지, 내가 말하는 사람이 즉 옥여 최서방일세. 여보게, 이 주인장이 형세도 남불지 아니하고, 공명도 할 만치 하였건마는, 자네 댁일과 같이 흉지(凶地)에 친산을 쓰고 독한 참척을 여러 번 보아 슬하에 자제가 없을 뿐더러, 우환이 개일 날이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이같이 조르시네그려. 차마 괄시할 수 없어, 큰 화패는 없을 듯한지라, 한 곳을 보아 드렸는데, 즉 최여옥의 국내 안일세. 자네도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아니라 할 수 없으니 주인장 말씀을 들어 보아 힘을 다하여 주선 좀 해드리게.”
“내 일이 되고 아니 되기는 노형 주선에 달렸습니다.”
“천만의 말씀이오, 일의 성불성은 모르겠습니다마는 저 어른 부탁도 계시고 어련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의 성미가 너무 끌끌하고 고집이 있어 섣불리 개구(開口)를 했다가는 뺨이나 실컷 맞고 돌아설 터이니 웬만하시거든 파의(罷議)를 하시고 다른 곳을 구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하오이다.”
“그 사람 성미는 나도 대강 짐작합니다마는 불고 염치하고 이처럼 말씀을 하오니 아무리 어려우셔도 힘써 주시오. 산값은 얼마를 달라 하든지 교계할 것 없소. 여북하여 선영을 파는데, 후한 편으로 하는 것이 옳지 않소? 노형만 하셔도 예서 고양 가는 길에 아무리 철로는 있지마는 가깝지 아니한 터에 여러 번 오르내리실 터이요, 그러느라면 하루 이틀 아니 될 터인데 댁 가사도 낭패가 적지않이 되실지라, 우선 돈 천이나 드릴 것이니 내왕 노자도 하시고 쌀섬이나 팔아 댁에 두시고 내 일을 전심하여 좀 보아 주시오.”
함진해가 그같이 말하면서 지폐 한 뭉치를 내어 주니 강씨가 재삼 사양하며,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돈이 다 무엇이야요? 아직 될는지는 모릅니다마는, 그만 일을 보아 드리기가 무엇이 힘이 든다고 이처럼 말씀하십니까?”
하며 받지를 아니하니, 임지관이 가장 사리대로 말하는 체하고,
“여보게, 고집 말고 받아 넣게. 주인장이 정으로 주시는 것을 아니 받아쓰겠나? 어서 받아 가지고 내려가 일 주선이나 잘해 보게.”
강씨가 말에 못 이기는 체하고 집어넣더니 그 길로 떠나갔다가 수삼 일 후에 다시 오더니,
“바람에 돌 붙여 보도 못 할러라, 삶은 호박에 이도 아니 들러라.”
하여 함씨의 마음을 불단 가마에 엿 졸이듯 바작바작 졸인 후에 몇 차례를 왔다갔다하며 애를 쓰는 모양을 보이더니, 한번은 올라와서 태산이나 져다 주는 듯이 덕색을 더러 내며,
“에구, 어렵기도 어렵다. 이렇게 힘들 줄이야 누가 알아? 영감, 어서 면례하실 택일이나 하시오. 이번에야 최서방의 허락을 받았소. 허락은 받았지만 한 가지가 내 소료보다는 대상부동한걸이오.”
“불안하오, 내 일로 해서 너무 고생을 하셔서. 그런데 산주의 응락을 받으셨다며 무엇이 소료에 틀린다 하시오?”
“다른 것이 아니라 산 값을 엄청나게 달라 하니, 나는 기가 막혀 선뜻 대답을 못 하고 왔습니다.”
“얼마나 달라길래 그리하시오?”
“그 사람 말이 그 자리가 자래로 유명하여 팔라 조르는 사람이 비일비재(非一非再)인데 십오만 냥까지 주마 하는 것을 팔지 아니하였거니와, 자네가 괄시할 수 없는 터에 이처럼 한즉 그 값이면 팔겠다 하니, 나도 아다시피 다른 사람이 주마는 값을 감하여 말할 수 없고, 영감 의향을 알지 못하여 말씀을 듣자고 왔습니다.”
“걱정 마시오. 내 형세가 전만은 못하지마는, 십오만 냥쯤이야 주선 못하겠소? 어서 그대로 약조를 하시고 이 다음 파수에 돈을 치르게 하시오.”
하고 십오만 냥 어음을 써서 주니, 강씨가 받아 척척 접어 염낭에 넣고 가더니 그 이튿날 산주의 약조서(約條書)를 받아 왔더라.
함진해가 면례 택일을 임지관더러 보아 달라 하여 일변으로 구산을 돋으며 일변으로 신산을 작광(作壙)하는데, 역꾼들이 별안간에 괭이가래를 집어 던지고 좍 돌아서서, 이상하니, 야릇하니, 처음 보았느니, 알 수 없는 것이니, 뒤떠들더니 광중 속에서 난데없는 돌함 하나를 얻어 내었는데, 함진해가 정구한 처소에서 조상식을 지내다가 그 소문을 듣고 상식상을 물릴 여부 없이 한달음에 올라가 돌함을 구경한즉 크기가 단천 담배 서랍만한데 뚜에를 무쇠물로 끓여 부어 단단히 봉하였는지라, 강철 끌 몇 채를 가져오라 하여 이에를 조아 내고 열어 보니 홍공단(紅貢緞) 한 조각에 금으로 글씨를 썼으되 전면에는,
‘옥녀탄금형 십대장상에 백자천손지지 함씨 입장.’
후면에는,
‘모년 모월 모일 옥룡자소점(玉龍子所點).’
이라 하였거늘 그날 회장(會葬)하러 온 사람이라, 구경하러 온 사람이라, 역꾼과 집안 하인 병하여 근 백 명이 한마디씩이라도 다 떠들며 참 대지니, 과연 명당이니 하는데, 함진해는 어떻게 좋던지 돌함을 품에 품고 임지관 앞에 가서 백번 천번 절을 하며,
“선생님 덕택에 과연 명혈을 얻었습니다. 선생님은 참 신안(神眼)이올시다. 이 비기(秘記) 좀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