驅魔劒구마검

이해조

대안동 네거리에서 남산을 바라보고 한참 내려가면 베전 병문 큰길이라. 좌우에 저자하는 사람들이 조석으로 물을 뿌리고 비질을 하여 인절미를 굴려도 검불 하나 아니 묻을 것 같으나, 그 많은 사람, 그 많은 마소가 밟고 오고 밟고 가면 몇 시 아니 되어 길바닥이 도로 지저분하여져서 바람이 기척만 있어도 행인이 눈을 뜰 수가 없는데, 바람도 여러 가지라. 삼사월 길고 긴 날 꽃 재촉하는 동풍도 있고, 오뉴월 삼복 중에 비 장만하는 남풍도 있고, 팔월 생량할 때 서리 오려는 동북풍과 시월 동짓달에 눈 몰아오는 북새도 있으니, 이 여러 가지 바람은 절기를 따라 으레 불고, 으레 그치는 고로 사람들이 부는 것을 보아도 놀라지 아니하고, 그치는 것을 보아도 희한히 여길 것이 없지마는, 이날 베전 병문에서 불던 바람은 동풍도 아니요, 남풍도 아니요, 서풍·북풍이 모두 아니요, 어디로조차 오는 방면이 없이 길바닥 한가운데에서 먼지가 솔솔솔 일어나더니, 뱅뱅뱅 돌아가며 점점 언저리가 커져 도래멍석만하여 정신차려 볼 수가 없이 팽팽팽 돌며 자리를 뚝 떨어지며, 어떠한 사람 하나를 겹겹이 싸고 돌아가니 갓귀영자가 쑥 빠지며 머리에 썼던 제모립이 정월 대보름날 구머리장군 연 떠나가듯 삼 마장은 가서 떨어진다.

그 사람이 두 손으로 눈을 썩썩 비비고 입 속에 들어간 먼지를 테테 뱉으며,

“에, 바람도 몹시 분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지. 내 갓은 어디로 날려 갔을까? 어, 저기 가 있네.”

하더니, 한 손으로 탕건을 상투째 아울러 껴붙들고 분주히 쫓아가 갓을 집어 들더니, 조끼에서 저사(紵紗) 수건을 내어 툭툭 털어 쓰고 가는데, 그때 마침 장옷 쓴 계집 하나가 그 광경을 목도하고 그 사람의 얼굴을 넌짓 보더니, 장옷 앞자락으로 제 얼굴을 얼핏 가리고 행랑 뒷골로 들어가더라.

중부 다방골은 장안 한복판에 있어, 자래로 부자 많이 살기로 유명한 곳이라. 집집마다 바깥 대문은 개구멍만하여 남산골 딸깍샌님의 집 같아도 중대문 안을 썩 들어서면 고루거각(高樓巨閣)에 분벽사창(粉壁紗窓)이 조요하니, 이는 북촌 세력 있는 토호재상(土豪宰相)에게 재물을 빼앗길까 엄살 겸흉부리는 계교러라.

그 중에 함진해라 하는 집은 형세가 남의 밑에 아니 들어, 남노비에 기구있게 지내는 터인데, 한갓 자손복이 없어 낳기는 펄쩍해도 기르기는 하나도 못 하다가, 그 부인 최씨가 삼취(三娶)로 들어와 아들 하나를 낳아 놓고 몸이 큰 체하여 집안에 죽젓개질을 할 대로 하며, 그 남편까지도 손톱 반머리만치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있는 일이면 옳고 그르고 눈을 기어 가면서라도, 직성이 해토(解土) 머리에 얼음 풀어지듯 하게 하여 보고야 말더라.

최씨의 친정은 노돌이라. 그 동리 풍속이 재래로 제일 숭상하는 것은, 존대하여 말하자면 만신이요, 마구 말하자면 무당(巫堂)이라 하는, 남의 집 망해 주며, 날 불한당(不汗黨)질하는 것들을 남자들은 누이님·아주머니, 여인들은 형님·어머니 하여 가며 개화(開化) 전 시대에 칙사(勅使) 대접하듯 하여 봄·가을이면 으레 찰떡 치고 메떡 치고 쇠머리·북어쾌를 월수·일수 얻어서라도 기어이 장만하여 철무리 큰 굿을 하여야 세상일이 다 잘될 줄 아는 동리니, 최씨가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자란 것이 그뿐이러니, 시집을 와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어디가 뜨끔만 하면 무꾸리질이요, 남편이 이틀만 아니 들어와 자도 살풀이하기라. 어디 새로 난 무당이 있다든지, 신통한 점쟁이가 있다면 남편 모르게 가도 보고 청해다도 보아 놓고 메를 올리라든가, 기도를 하라든가, 무당의 입이나 점쟁이 입에서 뚝 떨어지기가 무섭게 거행을 하니, 이는 최씨 부인이 무당이나 점쟁이를 위하여 그리하는 바가 아니라, 자기 생각에는 사람의 일동일정(一動一靜)으로 죽고 사는 일 까지라도 귀신의 농락으로만, 물 부어 샐 틈 없이 꼭 믿고 정신을 못 차려 그러는 것이러라.

장사(壯士) 나자 용마(龍馬)가 난다고 함진해 집에 능청스럽게 거짓말 잘하고 염치없이 도둑질 잘하는 안잠자는 노파 하나가 있어, 저의 마님의 눈치를 보아 비위를 슬슬 맞춰 가며 전후 심부름은 도맡아하는데 천행으로 최씨 부인이 태기가 있어 아들 하나를 낳으니 노파가 신이 열 길이나 나서,

“마님, 마님의 정성이 지극하시더니 칠성님이 돌보셔 삼신(三神) 행차가 계시게 하셨습니다. 에그, 아기가 범연한가, 떡두꺼비 같은 귀동자지. 오냐, 무쇠 목숨에 돌끈 달아 수명 장수 하여라.”

그 아이가 거적자리에 떨어진 이후로 무슨 귀신이 그리 많이 덤비던지 삼일 안부터 빌고 위하는 것이 모두 귀신이라. 겨우 돌 지나 걸음발 타는 아이가 돈은 제 몸뚱이보다 몇십 갑절이 더 들었더라.

그런데 그 아이에게 펄쩍 잘 덤비는 여귀(女鬼) 둘이 있으니, 최씨 마음에 죽지 아니하였고 살아 있어 그 지경이면 다갱이에서부터 발목까지 아드등 깨물어 먹고라도 싶지마는, 죽어 귀신이 된 까닭으로 미운 마음은 어디로 가고 무서운 생각이 더럭 나며, 무서운 생각이 너무 나서 위하고 달래는 일이 생겨 행담(行擔)과 고리짝에다 치마저고리를 담아서 둔 방축 머리에 줄남생이같이 위해 앉혔으니 그 귀신은 도깨비도 아니요, 두억시니도 아니요, 못다 먹고 못다 쓰고, 함씨 집에 인연이 미진(未盡)하여 원통히 세상 버린 초취(初娶) 부인 이씨와 재취(再娶) 부인 박씨라.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되어 산 사람에게 침노한다는 말이 본래 요사스러운 무녀(巫女)의 입에서 지어낸 말이라. 적이나 현철한 부인이야 침혹(沈惑)할 리가 있으리요마는, 최씨는 지각이 어떻게 없던지 노파와 무녀의 꾸며내는 말을 열 되들이 정말로만 알고 그 아들이 돌림 감기만 들어도 이씨 여귀, 설사 한 번만 해도 박씨 여귀, 피륙과 전곡(錢穀)을 아까운 줄 모르고 무당·점쟁이 집으로 물 퍼붓듯 보내다가, 고삐가 길면 디딘다더니 함진해가 대강 짐작을 하고 최씨더러 훈계를 하는데, 본래 함진해의 위인은 무능하지마는 선부형 문견으로 그같이 요사한 일이 별로 없던 가정이라.

“여보, 무당·판수라 하는 것은 다 쓸데없는 것이외다. 저희들이 무엇을 알며, 귀신이라 하는 것이 더구나 허무치 아니하오? 누가 눈으로 보았소? 설혹 귀신이 있기로 나의 전마누라가 둘이 다 생시에 심덕(心德)이 극히 착하던 사람인데 죽어졌기로 무슨 침탈(侵奪)을 하겠소? 다시는 이씨니 박씨니 하는 부당한 말을 곧이듣지 마오.”

“죽은 마누라를 저렇게 위하시려면 똥구멍이라도 불어서 아무쪼록 살려 데리고 해로하시지, 남을 왜 데려다 성가시게 하시오? 누가 이씨·박씨의 귀신이 무던하지 아니하다오? 무던한 것이 탈이지. 귀신은 귀하답시고 한 번 만져만 보아도 산 사람의 병이 된다오. 인제는 아무가 앓든지 죽든지 나는 도무지 상관치 말리다. 걱정 마시오.”

이 모양으로 몰지각하게 폭백하니 함진해가 어이없어 좋은 말로 타이르고 사랑으로 나간 후에 최씨가 전취 부인들이 살아 곁에 있는 듯이 강짜가 나서,

“할멈, 영감 말씀 좀 들어 보게. 아무리 사내 양반이기로 생각이 어쩌면 그렇게 들어가나?”

“영감께서 신귀가 그렇게 어두시답니다. 딱도 하시지, 돌아가신 마님 역성을 그렇게 하실 것 무엇 있나? 마님, 영감께서 돌아가신 두 마님과 금실이 아주 찰떡 근원이시더랍니다. 아무리 그러셨기로 누가 그 마님들을 옥추경(玉樞經)이나 읽어 무쇠 두멍에 가두었나? 떠받들어 위하시기밖에 더 어떻게 하시라고?”

“여보게, 염려 말게. 저년들 무서워 천금같이 귀한 자식을 기르며 두고두고 그 성화를 받을까? 내일 모레 영감께서 송산 산소에 다니러 가시면 산역을 시키느라고 여러 날 되신다데. 세차게 경 잘하는 장님 대여섯 불러 오게. 자네 말마따나 옥추경을 지독하게 읽어 움도 싹도 없게 가두어 버리겠네.”

“에그, 너무나 잘 생각하셨습니다. 조금 박절하지만, 두고두고 성가스럽게 구는데, 시원하게 처치하여 버리시지. 아무리 귀신이기로 심사를 바로 가지지 아니하고 살아 계신 양반에게 말만 이르니 박절할 것도 없습니다.”

“장안에 어디 있는 장님이 그중 영한구? 이 근처 돌팔이 장님들은 쓸데없어.”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돌팔이 장님은 무엇에 쓰게요? 제까짓 것들이 그 귀신을 가두기커녕 범접이나 해보겠습니까, 덧들이기나 하지. 장님은 복차다리 사는 정장님이 아주 제일이라고들 하여요.”

“그러면 그 장님을 불러다 일을 하여 보세.”

약속을 단단히 하고 손가락을 꼽아 기다리다가 그 남편이 길을 떠난 후 경을 며칠을 읽었던지 이씨 여귀, 박씨 여귀 잡아 가두는 양을 눈으로 현연히 보는 듯이 최씨 마음에 시원 상쾌하여 누워 자는 그 아들의 등을 뚝뚝 두드리며 말도 못 하는 아이더러 알아들을 듯이 이야기를 한다.

“만득아, 시원하지? 만득아, 상쾌하지? 너의 전 어머니 귀신들을 다 가두어 버려서 다시 못 오게 하였다. 으응, 어머니는 그까짓 것들이 네게 무슨 어머니? 죽은 고혼이라도 어머니 노래를 들어 보려면 그까지로 행세를 했을까? 만득아, 그렇지, 응응. 인제는 앓지 말고 잘 자라서 어미의 애쓴 본의 있게 하여라, 응응. 에그, 그것이야 엄전하게 잘도 자지.”

하며 입을 뺨에다 대고 쭉쭉거리는데, 안잠 마누라는 곁에 앉아 최씨의 말하는 대로 어릿광대같이,

“그렇고말고, 마님 말씀이 꼭 옳으시지. 어머니 노릇을 하려면 그까지로 행실을 했겠습니까?”

만득이 볼기짝을 저도 뚜덕뚜덕하며,

“아가, 어머니 말씀을 다 들었니? 이 다음에 어머니께 효성스러운 자손되고 할멈도 늙게 호강시켜 다고.”

가장 만득의 나이 장성하여 말을 아니 듣는 듯이 최씨가 꾸지람을 옳게 한다.

“오, 이놈, 어미의 애쓴 본의 없이 뜻을 거스르든지 할멈의 길러 준 공 모르고 잘살게 아니하여 주어 보아라. 내 솜씨에 못 배길라.”

이 모양으로 주거니받거니 지각 반점 없이 지껄여 가며, 대원수(大元帥)가 되어 십만 대병을 거느리고 적국을 한 북소리에 쳐 없앤 후 개선가(凱旋歌)나 부른 듯이, 날마다 둘이 모여 앉으면 그 노래 부르기로 세월을 보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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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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