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聖人
〔라〕 Santus, Sancta
〔영〕 Saint
일반적으로 성인(聖人)이라는 말은 ‘지혜와 덕이 뛰어나 남들이 길이 본받을 만한 사람’ 을 말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성자(聖者)가 있다. 인간 이상(理想)의 추구는 세계의 대종교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교리와 표상과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어떻게 완성될 수 있는가 하는 인간상(人間像)의 문제는 근본적 주제로서 한 사회의 가치관을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모든 사회가 이상상(理想像)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그것은 항상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새로운 것과 대치되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인이란 낱말도 이와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크게 차이가 있다.
Ⅰ. 가톨릭의 성인
‘성인’ 은 우선 ‘거룩한 자’ 로 이해하여야 하는데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설명하는 거룩함에 대해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거룩함의 원천과 본질〕 거룩함의 원천 : 하느님은 모든 거룩함의 원천이다. 성서는 여러 부분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최초의 계시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이 장엄하게 나타났을 때 이루어졌다(출애 19, 3-20).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거룩한 자가 없다. 인간은 죽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바라볼 수 없을만큼 거룩하지 못하다(이사 6, 1-5). 그런데 하느님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자신과 피조물 사이의 간격을 없앴다. 즉 하느님은 여러 백성 중에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뽑고 특별한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사 10, 20)이 되어 인간이 당신을 거룩한 분으로 인정하고 유일한 참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그래서 인간을 통하여 당신의 거룩함이 나타나기를 원한 것이다.
거룩함을 나누어 주심 : 성서는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한 자, 즉 성도(聖徒)라고 일컫는다(로마 1, 7 ; 15, 25 : 1고린 1, 2 : 16, 1 : 골로 1, 2). 물론 이것은 하느님이 만유 위에 가장 거룩한 분임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이사 6, 3). 즉 인간 스스로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가장 거룩한 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함을 나누어 주고자 하였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이미 구약 시대에도 있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되었고, 이들이 죄를 씻고 하느님 경배에 온 힘을 쏟으며 하느님과 맺은 약속에 충실하였을 때에는(레위 11, 44-45 : 19, 2 : 20, 7. 26 : 21, 8)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외적이며 의식적인 정결과 예식이 강조되었지만(레위 17-23장),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죄를 벗어 버리고 양심의 정결함을 통하여, 그리고 이방인들과 절연(絶緣)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이사 1. 26 ; 4, 3 : 5, 16 ; 6, 3. 5). 즉 거룩한 생활, 성화의 길로 나아가야 된다고 하였다.
신약 시대에는 이러한 사상이 더욱 발전되었다.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은 입문(入門) 예식인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되는데, 하느님이 거룩하듯이 거룩하여야 할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주어진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완성하기 위하여 신학적 · 도덕적인 덕행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로써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나라로 향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잊어서는 안될 점은,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거룩함을 나누고자 먼저 다가섰다는 것이다. 인간이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도 주로 하느님의 법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가능하게 되는데, 하느님의 초자연적 은혜 곧 은총이 인간을 돕는다는 것이다.
〔의미와 개념〕 성인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누어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하느님의 거룩함을 나누어 받아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한 자 · 성도 · 성인 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인을 넓은 의미로 이해한 것이다. 여기에는 육체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 삶을 마친 이들도 포함된다. 즉 세상을 떠나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이들이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는 이들 모두 이에 해당된다. 따라서 매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에 기억하는 성인은 넓은 의미의 성인 중에서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이들이다.
좁은 의미 또는 본래적인 의미의 성인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랑을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교적인 덕성을 갖추고, 일생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끊임없는 결합과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았던 뛰어난 이들로, 교회가 시성(諡聖)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성인으로 선포한 이들을 말한다. 교회가 성인의 성성(聖性)을 공인하는 것은, 그들이 생존시 보여 준 덕행이나 순교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증거요 본보기였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자들은 성인들을 공경하고 그들에게 전구(轉求)를 청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순교자들은 자기 피를 흘림으로써 믿음과 사랑의 최고 증거를 보였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보다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교회는 언제나 믿었으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그들을 특별한 정성으로 공경하며 전구의 도움을 열심히 간청하여 왔다” (교회 50항).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인 공경(聖人恭敬)은 영웅 숭배(英雄崇拜)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성인을 하느님의 거룩함을 나누어 받아 성화의 길로 나아가서 거의 완벽하게 그리스도와 결합하고 일치한 자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그의 위대함이 그리스도에게로부터, 그리고 전적(全的)으로 그리스도라는 바탕 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은총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성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초대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도록 그를 들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행동 속에서 그를 지탱해 주는 지주였던 것이다. 물론 동시에 은총이 성인의 자유 의지를 통하 여 하느님의 사랑에 자유로이 응답할 수 있게 하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하여 그의 자유를 온전히 내말 길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하느님 은총의 걸작품인 동시에 자유 의지를 가진 자들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때때로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특이하고 기이한 행동이나 신비스런 삶 또는 그에 따르는 우연한 현상들 때문에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 일치한 가운데 진실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의 방식, 곧 덕을 실천하고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 영웅적이리만큼 충실하고 항구하게 또한 기꺼운 마음으로 훌륭히 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성인이 되는 것이다.
〔성인 공경〕 성인 공경은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있었던 순교자(殉敎者) 공경에서 시작되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하느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은 완벽한 그리스도인이고 성인들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순교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내놓음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최고의 사랑을 증명해 보였으며, 그들이 겪은 고통으로 인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마침내는 하느님의 백성이 이루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의 머리인 그리스도와 완전하게 결합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순교자들을 하느님의 거룩함에 확실히 참여한 이들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당시 계속된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성인들을 공
경하며 그들을 본받으려 노력하였고, 동시에 그들의 전구를 빌게 되었다. 신자들은 순교자들이 하느님께 전구하여 자신들이 순교자들을 닮아 용기 있게 완전한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 주기를 기도하였던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른 분들의 생활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국가를 찾으려는 충격의 새로운 동기를 발견하게 되며(히브 13, 14 : 11, 10), 동시에 무상(無常)한 현세의 변화 속에서도 각자에게 고유한 신분과 조건에 따라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인 성덕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방법을 배우게 된다. 우리와 같은 인간성을 지니고서도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다 완전히 닮아 가는 그분들의 생활 속에서(2고린 3, 18) 하느님은 당신의 현존(現存)과 당신의 모상을 생생하게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들 가운데서 하느님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당신 나라의 표지(標識)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교회 50항).
이러한 성인 공경은 하느님에게만 바쳐야 할 예배를 손상시키거나, 성인에게 전구를 청하는 것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1디모 2. 5)의 역할을 축소시키지는 않는다. 성인들을 공경하는 이유는 성인들의 생활에서 모범을 찾으려는 것이고, 전구를 청하는 것은 하느님께 기도하여 주기를 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이미 제2차 니체아 공의회(787)에서 하느님께 대한 존경을 흠숭지례(欽崇之禮)라 하였고, 성인들에 대한 존경을 공경지례(恭敬之禮)라 하여 양자를 구별했다. “진정한 성인들의 공경은 외적(外的)행사의 복잡성에 있다기보다는 모름지기 우리의 행동적 사랑의 깊이에 있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겠다. 이런 사랑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교회의 선익(善益)을 위하여 성인들의 ‘생활에서 모범을 찾고, 통공에서 일치를 찾으며 전구에서 도움을 찾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와 천상 형제들과의 교류는 신앙의 충분한 빛을 받아 이해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절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바쳐지는 흠숭을 약화시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욱 완전하게 한다는 것을 신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교회 51항).
〔성인의 통공 및 역할〕 성인 공경이나 성인에게 전구를 청하는 것은 사도 신경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라는 기도문과 같이, 넓은 의미의 성인들이 기도와 희생과 선행으로 신자들을 도울 수 있게 서로 결합되어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사심 없는 사랑에 가득 찬 성인들은 지상의 나그네들을 위한 대변자와 보호자가 되어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의 공로와 기도를 바친다. 즉 성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전구하며, 또한 하느님 아버지에게 중개하는 그리스도의 중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성인들의 초자연적인 위대함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할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 자신들의 영적 · 물질적인 요망 사항을 적절히 도와 주도록 기도함으로써 성인들의 전구에 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인들과 지상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마치 형과 아우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확고한 친교 관계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와 맺는 관계나 하느님과 맺는 관계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 신비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있는 모든 참된 초자연적인 사랑의 행동들처럼 오히려 그 관계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Ⅱ. 유교의 성인
〔공자 이전의 성왕(聖王) 개념〕 은대(殷代)의 갑골문 (甲骨文)은 무정(武丁) 시기부터 은나라의 멸망 시기(기원전 1200~1040경)까지 약 160년 동안의 것으로, 왕족과 관계된 거북점의 기록뿐이라는 사료의 제한성을 갖고 있 기는 하지만 중국 최초의 문헌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갑골문에서 대두되는 인간 은 왕(王)뿐으로서 인간의 모든 일을 상징적으로 독점하 고 있으며 자신을 여일인(余一人)이라고 칭하고 있다. 왕은 최고신인 제(帝)와 인간 사회 사이의 중재자로서 ‘제’ 의 축복을 받아 백성에게 전하며 사후에는 ‘제’ 의 궁정에서 손님 대접을 받는다고 믿어졌다. ‘제’ 는 모든 자연 현상의 통제자일 뿐만 아니라 추수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며 제오신(帝五臣)을 거느리고 있는 천상의 상제(上帝)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최고신과 왕과의 특수한 관계는 서주(西周) 시 대에 와서 유명한 천명(天命) 사상으로 이론화되었는데, 이 천명 사상을 바탕으로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서는 철왕(哲王)과 성왕(聖王)이라는 왕의 이상상이 형성되었다. 서주에서의 왕은 은대보다도 더 고귀한 위 치를 차지하여 생전에 덕치(德治)로서 배천(配天)하여 ‘천’ (天)의 일을 완성시키며(大雅文王 周頌思文, 《經》 〈召誥〉), 하늘 아래 있는 모든 만물의 모범이 되는 존재이다(下上之武, 《詩經》 <大雅>, 下武). 이러한 이상적인 왕이 되기 위한 실천론으로 추천되는 것이 효사(孝思)로서, 옛 성왕(聖王)들의 모범을 생각하여 본받으라고 《시경》 은 거듭 권고하고 있다. 서주 시대에 형성된 왕의 인간적 · 도덕적 자질을 중심으로 하는 왕의 이상상은 고대 중국의 인간상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곧 왕뿐만 아니라 왕을 보좌하는 공신들에게도 성인(聖人)이나 철인(哲人)이라는 용어가 쓰여지고(<大雅>, 烝民), 그와 반대되는 부정적 인간상으로 우인(愚人) 혹은 광인(狂人)이라는 반대어가 나온다. 그러나 서주 중엽 이후로 성(聖)과 철(哲)은 부패한 재상(<小雅>, 十月之丈)이나 자만 하는 신하들(<小雅>, 正月), 혹은 도덕적으로 무관한 의미 로 사용되기도 하였다(<大雅>, 板). 이러한 현상은 《시경》 의 탄식시에 나타나듯이 ‘천’ 이 항상 선인을 돕는다는 도덕 정치 사상에 대한 회의와 함께 서주 중기부터 동주 초기 사이에 정치적 혼란 속에서 왕의 이상은 힘을 잃어 버리고 인간상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비록 그 편찬은 몇 세기 늦으나 춘추(春秋) 시대의 역 사 기록으로서 공자의 직접적인 사회 배경을 보여 주는 《춘추좌전》(春秋左傳)은 춘추 시대의 제후들과 정치인 들을 많이 소개하면서 군주의 이상상인 성인과 신하의 이상상인 현인(賢人)을 제시하였다. 《시경》에 비해 새로 운 것은 백성들에 대한 충(忠)을 신(神)에 대한 신(信) 보다 앞세워야 한다는 것(<桓公> 6)과, 예(禮)를 중요시 하면서 진정한 예란 의식만을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昭公> 5)는 점이 다. ‘현인’ 은 춘추 전국 시대에 부각된 용어로 《춘추좌전》에는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을 예의 근본으로 보았으므로(<昭公> 2), (춘추좌전》의 현인상도 실제로는 예의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시경》에서는 주로 종예(宗禮) · 백예(百禮)라 하여 제사 의식을 가리키던 예가, 《춘추좌전》에서는 인간 생활 전체와 사회 관 계로까지 보편화되어 인간과 사회의 기간이며 규범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었다. 다시 말해 예와 효의 개념은 공자 이전에 이미 확립되었던 것으로 공자는 이러한 개념들을 받아들이면서 인과 군자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여 유가 적 인간상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공자의 성인과 군자〕 공자(孔子, 기원전 552/551~479) 의 사상을 충실히 전하는 역사적 사료는 그의 사후 노 (魯)나라와 제(齊)나라에서 가르치던 제자들의 기록을 수집하여 편찬한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論語) 하나뿐 이다. 《논어》 속의 공자가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가장 중요한 용어는 성인과 군자였다. 공자는 《시경》에서는 왕의 이상상이던 성인을 인간 이상상으로 재해석하여 자신과 모든 인간의 최고 이상이라고 하였다(<述而> 25, 33). 공자가 성인이라는 칭호를 준 유일한 인물은 요(堯)와 순(舜)으로서 그들 역시 “자신의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성인의 목표를 도달하는 데 힘들어 했다고 하였다(<雍也> 44 ; 〈憲問〉 44). 결국 성인이나 군자나 인자(仁者)는 모두 다 인의 〔仁之道〕 내지 군자의 도〔君子之道〕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는 마찬가지이지만, 성인은 도달한 자이고 군자와 인자는 아직도 추구하고 있는 자라는 도달 정도의 차이가 있 다. 그리고 인을 이루는 방법, 곧 실천론을 서(恕) 또는 충서(忠恕)라는 말로 표현하여 자신을 비추어 남을 이해 하며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황금률을 말하였다.
성인이 최고의 이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공자의 중심적인 인간상은 군자와 소인이라는 상대적 개념들이었다. 《시경》에서는 사회 신분으로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지칭하던 이 용어들을 변형시켜 인격자 혹은 인격의 결여자를 대표하게 하는 데서 공자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군자를 이루는 요소는 덕을 숭상함(崇德)과 하늘의 명령을 앎〔知命)이다. 《시경》에서는 왕위를 받고 지속시 키기 위한 왕의 전유물이었던 ‘덕’ (德)의 개념이 훨씬 보편화되어, 공자는 덕을 모든 인간이 ‘천’ 에서 받은 것 이며(<述而> 22), 누구나 키워야 할 책임을 받은 것으로 서(<子路> 22), 인간의 도덕적 가능성을 지칭하였다. ‘명’ (命) 역시 《시경》에서는 왕에게 내려지는 천명이었는데 논어에서는 보편화되어 한편으로는 운명으로서의 생과 사(<雍也> 2 : 〈先進〉 7), 불치병(<雍也> 10)을 의미하였으 며, 다른 한편으로는 공자 자신의 사명과 도의 궁극적 성취로 보았다(<憲問> 36). 따라서 명을 알아야만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였으나(<爲政> 4), 공자 사상의 특성은 지 천명(知天命)보다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덕을 키우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숭덕(崇德)의 실천론으로 서 대인관계에서의 충, 말에 있어서의 신의, 행동에 있어서의 의를 지침으로 제시하였다(<廣州> 10). 공자는 덕의 완성을 인(仁)이라고 불렀고 따라서 ‘인’ 은 군자의 최종 규범이었다(<里仁> 5)
각 사람의 상달(上達) 또는 하달(下達)에(<憲問> 24) 따라 군자와 소인(小人)이라는 두 종류의 인간으로 구분 하였다. 첫째는 내적 자질로서, 군자는 원칙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융통성[周]이 있어서 큰일을 다룰 수 있지만, 소인은 한 가지 특수한 기술〔器〕에는 능할 수 있으나 큰 일을 맡길 수는 없다(〈爲政〉 12, 14). 군자의 삶은 질(質) 과 문(文), 곧 도덕적 덕이라는 내용과 문화 전승의 총체 를 말하는 문(文)이라는 윤곽을 조화시켜야 한다(<雍也> 6). 덕의 완성이 인(仁)이고 문의 완성이 예(禮)이므로 결국 군자는 인과 예, 곧 내용과 표현의 완전한 조화를 이룬 인격자를 지칭하였다.
둘째는 외적 태도의 차이로 군자는 항상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여 가책이 없으므로 평온한 데 비해, 소인은 남 앞에서 걱정하거나 교만하며 항상 불안하다고 묘사하였다. 셋째는 남과의 관계에서 군자는 남의 좋은 점을 키우며 언제나 동의하지는 않지만 화합 하는데 비하여 소인은 동의하는 것 같지만 화합하지 못 한다. 한마디로 군자는 다른 이들을 키우는 데 반해, 소 인은 파괴시키는 일을 한다. 따라서 참으로 인간을 사랑 하고 미워할 수 있는 것은 군자뿐이며, 진정한 친구를 가 질 수 있는 이도 군자뿐이다. 군자는 가난 속에서도 부유 속에서도 자적할 수 있어서 가난한 중에도 기쁠 수 있고 부유 속에서도 예를 행한다(<學而> 15).
넷째는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는 것은 그들이 소유한 규범의 차이이다. 그런데 규범은 두 가지로 분류할 필요 가 있다. 군자의 일차적인 규범은 자신에 대한 충실로서 언제나 자기 안에서 잘못의 이유를 찾기 때문에 남이 몰 라주어도 근심하지 않는 데 비하여, 소인은 남에게서 원 인을 찾으므로 무슨 잘못이 있으면 남에게 탓을 돌린다. 그런데 남이 몰라주어도 평온히 남아 있을 수 있는 군자 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답은 《논어》에 언급된 공자의 개인 생활 기록에서만 찾을 수 있다.
덕의 근원인 ‘천’ 을 공자는 자신의 최종 규범으로 삼 았다. 《시경》에서 최고신으로 나왔던 ‘천’ 은 논어에 17 번 언급되는데, 그중 10번은 공자의 말 속에, 7번은 다 른 이들의 말로 나온다. 우선 공자는 ‘천’ 을 위험이나 슬 픔에서는 물론 자신의 무죄를 증거하는 속일 수 없는 도 덕의 원천이라고 불렀고(〈雍也〉 26 : <八佾> 3), 자신을 이 해하는 유일한 존재로 이해하였다. <요왈 편>(堯曰篇) 제문(祭文) 속에 인용된 것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의 말 에서 나오는 6번의 ‘천’ 은 모두 공자의 사명과 연결되어 있다. 덕이 하늘에서 주어졌기에 결과적으로 덕이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하늘이라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다. 그러나 《논어》에서 하늘, 혹은 종교적 측면은 인간 내부라는 근저 밑에 숨겨져 있다. 따라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규범은 자신을 초월하는 인(仁)이라는 목표에 도 달하기 위한 자신에 대한 진실성이다. 자기 자신의 생애 와 직결될 때 외에는 하늘을 언급하지 않았던 공자의 모범은 인간주의적 유가 사상의 강점을 표시하는 동시에 계속되는 중국 전통에서 종교 감정을 만족시켜 줄 수 없었던 유가 사상의 약점이기도 하다.
〔묵가의 도전과 맹자의 재해석〕 기원전 5세기에 묵적 (墨翟, 기원전 479?~381?)은 강력한 성왕의 이미지를 제시하여 공자가 확립시켜 놓은 유가의 군자상에 도전하였다. 그는 자신의 유명한 열 가지 주장을 통하여 《시경》에 대한 더 자구적이고 보수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는 겸상애(兼相愛)와 교상리(交相利)라는 대원칙 아래 인 · 의 · 효 등 유가에서 군자의 도로 제시한 것을 상대 화하고 겸(兼)이라는 개념 안에 흡수해 버렸다(<兼愛> 下). 또한 예(禮)와 악(樂)과 명(命)을 존중하는 유가적 관습이 일반 서민에게 미치는 폐단을 신랄히 비판하였 다. 인간관계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차등을 두는 유가의 실천론을 별(別)이라 하여 배척하였고, 모든 이를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겸애가 곧 천지(天志)로서 인간의 궁극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天志> 上). 하늘의 뜻을 백성에게 전달하기 위해 주장된 ‘상동’ (尙同, 윗사람 의 뜻과 일치함)이라는 개념은 《시경》에서와 같이 다시 천자를 천과 백성 중간에 선 중심적 인물로 부각시켰다. 따라서 묵자의 인간상은 우선적으로 왕을 위한 것이었다. 일반인을 위한 현인상이 언급되기는 하였지만, 〈상현 편〉(尙賢篇)에서까지 주인공은 현인을 우대해야 되는 성왕이며, 왕이 상벌로써 장려하면 모든 이가 현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묵가의 성왕은 질서의 수호자 이며 공적에 따라 모든 이를 공정히 다루는 활동적인 군주의 모습이었고, 인간의 내적 수양이나 문화적 교육에 대해 관심을 둘만한 여유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묵가 사상이 만연하였던 전국 시대 중기에 유가를 재정비한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의 인간상은 여러 면에서 공자를 재해석한 것이었다. 우선 《논어》에 서 인간상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던 군자와 소인이 라는 상대적 이미지들이 아래로 내려가고, 대신 성인(聖人)이 중심적 이미지로 부각되었다. 성인이란 《논어》에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높은 이상이었으나 《맹자》에서는 모든 이가 될 수 있는 더 포괄적이고 다양성을 지닌 보편적 인간상으로 묘사되었다. 이렇게 맹자의 중심적 인간상이 군자에서 성인으로 변천된 것은 묵가의 강력한 성왕 사상에 대항할 만한 인간상으로 내어 놓기에 군자상 은 너무나 약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국 시대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맹자의 성인상은 시기적으로 500년마다 (<公孫표> 上) 일어나는 왕자(王者)라는 정치 이상과 내적 완성자로서의 성인이라는 보편적 인간 이상의 두 면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요와 순을 왕자일 뿐만 아니라 인륜을 완성시킨 최고 인물〔人倫之至〕로 보았고, 공자 역시 왕자만이 할 수 있는 춘추(春秋)를 썼다는 것을 강조하여 두 면의 이상이 이들 안에서 합치되게 하였다.
보편적 인간 이상으로 성인상을 제시함에 있어서 맹자 는 성(性) 자체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변함이 없이 같은 것이며, 성인은 인간 안에 있는 공통적인 것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므로, 결국 성인과 인간은 동류자(同類者) 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공통점을 맹자는 그의 유명한 성 선설(性善說)로 발전시켰는데, 성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개나 소, 산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결국 하늘에서 받 은 것을 지칭하였다. 다시 말해서 맹자의 성은 논어의 덕 (德)에 해당되는 개념으로 훨씬 구체화되어 있지만 결국 인간성의 배양을 가능하게 하는 도덕성을 의미한다. 고 자(告子)와의 토론에서 보듯 맹자가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은 인성의 독특한 면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덕성 으로서 이것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는 보편적 근거였 다. 이 사단(四端)은 뿌리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마 음을 지키는 것(存心, 恒心, 不動心)이 곧 성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논어》에서는 인격자 근저에 숨어 있던 하늘이 맹자에서는 성(性)의 형이상학적 근거로 확립되었고, 도 덕의 근원이 되는 하늘은 성실하다고 묘사되었다. 맹자 는 명예를 두 가지로 구별하여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도덕성을 키우는 천작(天爵)이 왕이 내리는 벼슬 등의 인작(人爵)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곧 인간은 외적 계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선한 본성을 키움으로써 하늘을 알게 되고 섬긴다는 유가적인 인간 중심적 종교 사상이 확립되었다.
〔도가의 도전과 순자의 집대성〕 전국시대에 유가의 인간상에 도전하여 독자적인 인간상을 대두시킨 또 하나의 학파는 도가(道家)였다. 《논어》에 나타나는 은자들의 예에서 도가적 생활 양식의 기원을 엿볼 수 있고, 맹자는 묵적(墨翟)과 더불어 보신(保身)을 주장하는 양주(楊朱)를 유가의 가장 큰 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도가의 인간상이 뚜렷이 형성된 것은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에서였고, 이들의 도전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전국시대 말기에 유가 사상의 집대성을 시도한 순자(荀子, 기원전 313~238)였다.
우선 노자는 전통적인 하늘의 개념을 형이상학적인 도(道)로 해석하여 모든 만물의 근원으로서 이름을 지어 묘사할 수 없는 절대자이며, 모든 것 안에 내재하는 원리로서 만물을 키우는 어머니라고 표현하였다. 노자의 성인은 도를 포용하여 천지 속에 내재한 도의 무위를 배움으로써 사욕(私慾) 없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돌아가게 한다. 따라서 성인만이 참된 지도자나 군주가 될 수 있다. 노자에게는 이상적 인간상과 이상적 왕의 상은 하나 이며, 이러한 일치성 때문에 왕자에 대한 토론이 따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노자의 인간상이 왕만을 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왕이 인간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장자의 사상을 충실히 나타내고 있는 〈내편〉(內篇)을 중심으로 보면, 도 사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장자는 노자와 같으나 노자보다도 조화(造化) 또는 조물자(造物者)로서 현상세계 안에 내재하는 도의 원리적인 면을 더 강조한 특색이 있다. 장자는 성인뿐만 아니라 지인(至人) · 신인(神人) · 진인(眞人) 등 독특한 도가적 용어 들을 사용하여 성인이 도가적 특색을 지니게 하였다. 장자의 성인은 도를 절대 규범으로 해서 인간 사회가 만든 모든 상대적인 구별, 선과 악, 이익과 손해, 삶과 죽음이라는 구분을 초월하며 이들을 화합시킨다. 실천적으로는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통해 오관(五官)에서 오는 개인적 욕망과 인간적 지식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서 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모든 환경속에 만족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도가의 성인들은 무위의 사람들로서 천지 안에 내재하는 도의 관점에서 인간사를 내려다보기 때문에 하늘의 소인〔天之小人〕은 인간의 군자〔人之君子〕요, 인간의 소인人〔之小人〕은 하늘의 군자(天之君子)라고 유가의 군자상을 풍자하였다(<大宗師篇>.
순자는 〈비십이자 편〉(非十二子篇)과 〈해폐 편〉(解蔽篇)에서 맹자와는 달리 다른 학파를 완전히 배척하지 않고 각파가 진리의 일곡(一曲), 혹은 일우(一隅)를 가지고 있다고 평하였다. 그는 다른 학파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도의 전체를 이해한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유가적 집대성을 시도하였다. 특히 순자의 인간상 형성에 가장 뚜렷한 영향을 준 학파는 묵가와 도가이다. 묵가의 ‘겸 사상’ 을 받아들여 각기 본분을 나누어 갖는 것이 천하를 바르게 한다는 유가 사상으로 변형시켰고, 이(利)도 의로움을 앞세우고 이익을 뒤로 한다는 원칙 아래 흡수하였으며, 절용(節用)도 예악을 존중하는 범위에서 받아들였다. 도가에 대한 순자의 태도는 독창적이었는데, 도가에서 가장 중요한 상도(常道)라는 개념을 채택한 후 인도를 천도에서 분리시킴으로써 도의 개념을 유교화하여 도란 인간이 걸어야 할 인도(人道)라고 정의 하였다. 순자의 성인은 도가의 성인처럼 자연 속에서 천지의 도를 배워 그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알아 인간의 몫인 인간사에 전념함으로써 종국적으로 천지의 화육에 참여한다. 다시 말해 순자의 사상은 도가 의 영향을 받았지만 하늘과 인간의 할 바를 구분한다(天人之分)는 사상과 인도가 곧 상도라는 사상을 확립함으로써 도가의 도전에 체계적으로 응전한 유가의 재확립이 었다.
순자가 형성한 이상적인 인간상의 재정비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사(士)→군자(君子)→성인(聖人) 으로 인간상의 발전적 체계를 확립한 것이다. 사(士)란 법을 사랑하여 실천하려는 초보자이고, 군자는 뚜렷한 의지와 열렬한 배움으로 도에 가까이 간 자이며, 성인은 실천할 뿐만 아니라 모든 배움의 범주를 이해하여 넓고 너그럽고 통찰력을 가진 통달한 자이다. 순자는 “성인이란 인륜을 다한 사람이고 왕이란 제도를 다 이룬 사람이다”라 고 하였다. 순(舜)으로 대표되는 제도와 예의를 확립한 성왕 사상과 중니(仲尼)와 자궁(子弓)으로 대표되는 인륜을 완성한 성인 사상이 구별되면서도 보충적인 것이어서 당시의 현자들은 양쪽을 다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중에서도 더욱 중요한 보편적 인간상으로서의 성인 개념을 보면, 순자는 성인이란 쌓아 올린 사람(聖人也者 人之所積, <正論篇>)이라고 정의하였다. 곧 불완전한 성 (性, 감정적인 노력이 가해지지 않는 본능적인 욕구와 거기서 나온 감정)을 인간의 마음(心)이라는 생각할 수 있는 기능〔知〕으로 인도하고 이것을 행동〔能〕으로 실천하는 것 을 위(僞)라고 하였다. 결국 ‘성’ 과 ‘위’ 는 보충적인 개념으로 이 둘이 합해질 때 성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순자의 성인은 예로써 인간의 도를 완비하여 아름답게 된 인간으로서(聖人備道 全美者也, <禮論篇>), 순자에서 인도(人道)의 최고봉인 예(禮)는 《논어》에서 인 (仁)이 가졌던 위치를 차지한다. 곧 예로써 인간은 자신을 바르게 하고 생과 사를 받아들이며, 하늘을 섬기는 것 을 배우고, 조상을 공경하며, 군주와 스승을 높인다. 따라서 예는 인간관계의 완성이며, 최고의 국가 통치술로서 개인과 사회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예를 가진 사람은 존경받는다고 하였다. 예의 완성 자인 성인은 인간의 몫을 다하였기 때문에 천지의 화육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곧 순자에게서 하늘과 인간은 시작인 성(性)에서가 아니라 마지막 완성 단계인 참천지(參天地)에서 합일된다.
〔신유가의 성인〕 송(宋)대부터 이기설(理氣說)이라는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적용하여 유교 전통에서 약했던 우주론적 측면을 강화하면서 성인이 되는 학문이라는 원시 유교의 성격을 되살리려는 신유학 운동이 일어났다. 주자의 스승인 정이천(程伊川)은 “배워서 성인이 될 수 있습니까?” 라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람들이 성인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이라고 잘못 이해해서 성인이 되는 길이 천여 년 간 없어졌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배움을 찾지 않고 밖의 것 만을 배워서 끝없이 외우고, 꾸미는 문체에만 정신을 쓰고 있다. 그래서 소수만이 참된 도에 도달하니, 지금의 학문은 안자(顔子, 공자의 제자 안회)가 좋아하던 것과는 달라지게 되었다” (《近思錄》, 卷 2, 3).
《근사록》(近思錄)은 1175년 주자가 친구와 함께 편찬한 성리학의 입문서로서 송대 신유학자들의 이론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앞의 인용문은 성인이 되겠다는 것이 신유학자들의 일차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한대에서 당대에 이르기까지 1천여 년 동안 경전을 외우고 화려한 문장을 써서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만을 바랐던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님을 신랄하게 지적하였다. 신유학자들은 한결같이 제자들에게 마음을 깨끗이 하고 공자와 안연을 본받아 성인이 되기를 재촉하였던 것이다.
안회를 아성(亞聖)이라고 불렀던 주돈이(周敦頤)는 “성인은 하늘을 희구하고, 현인은 성인을 희구하며, 선비는 현인을 희구한다” (聖希天 賢希聖 士希賢, 《近思錄》, 卷 2, 1)고 하였다. 이는 성인에 이르는 단계적 과정을 상 정한 것인데, 처음에는 도에 뜻을 두는 선비가 되어 덕을 쌓은 현인이 되려고 노력하며, 그 다음은 인간성을 완성한 성인이 되려고 하며, 성인은 하늘을 본받으려 한다고 하였다. 성인은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덕을 실천한다(《朱子語類) 20)는 주돈이의 성인관을 받아들여 정리한 주자는 “성인은 자신의 본성을 다 이루었기에 천지의 도가 인(仁)일 뿐임을 안다. 이미 천리(天理)를 기뻐하게 되었기에 천명을 알고 근심함이 없게 되었다” (《周子本義》 3-4b)고 하였다. 다시 말해 성인은 하늘과 하 나가 되어(聖人與天爲一) 천지의 화육에 참여하고, 무위로써 마음을 쓴다(聖人有心而無爲)고 하였다. 불교의 무심(無心)이 아니라 사사로운 이익을 찾지 않는 무사심(無私心)의 상태인 것이다(《近思錄》, 卷 2, 76).
신유학자들에게 있어서 성인이란 덕을 완전히 이룬 사람으로 공자를 성인으로 간주하였다면, 안회는 이에 이르기 위해 배우기를 즐겨했던[好學] 선비이며 현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근사록》에 많이 언급된다. 안회가 실천하였다는 성인이 되는 공부방법으로 신유학자들은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제시하고, 이 둘을 수레의 두 바퀴 또는 새의 두 날개에 비유하였다. ‘거경’ 이란 마음안에 주어진 천리를 고요한 중에서나 행동 속에서 존양(存養)하는 수양법이다. 우선 정좌(靜坐) 등의 명상을 통해 감정이 발하기 전인 미발(未發) 상태에서 중(中)의 균형을 보존하도록 마음을 가라앉히고 밝게 한다. 일에 임하여 감정과 사고 활동이 시작한 이발(已發) 상태에서는 천리에 어긋남이 없는지 성찰함으로써 극기를 통해 조화〔和〕를 이룬다. 결국 ‘거경’ 이란 정(靜)과 동(動)의 상태를 관통하여 공경하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며, 마음 안에 천부적으로 주어진 천리를 보존하는 주일 (主一)의 수양 공부이다.
‘궁리’ 는 ‘거경’ 보다 주지적이고 이론적인 공부로, 여기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대학》(大學)의 8조목 중 처음 두 조목에 해당하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학(理學)과 심학(心學)으로 구분된다. 주자는 격물치지는 사물과 사건마다에 있는 이치를 내 마음의 이치로 파악하여 객관적 지식을 축적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활연 관통하여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먼저 하나하나의 이치를 안 후에 그것을 거듭 익혀서 전체를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왕양명은 격물치지는 내 마음의 뜻을 바르고 성실하게 하는 것으로 배우지 않고도 아는 양지(良知)를 온전하게 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공부란 도심(道心) 곧 인간 마음의 본체를 회복하는 일이고, 앎 역시 일을 실천하면서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이 유래하였다. 앎과 실천이 함께 나가야 된다는 주자학의 병진사상을 더욱 강화하여 합일을 주장한 것이다.
성인이 되는 공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에는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원시 유교의 정신을 되살려서 어진 사람이 될 것을 가르쳤고 천리를 보존하고 사욕을 제거하는 데(存天理去知欲) 공부의 핵심이 있다는 데 일치하고 있었다. 단지 그 과정의 차이 때문에 주자의 성인이 금욕적이고 엄격하며 주지적인 선비상을 연상시킨다면, 왕양명의 성인은 실천적이고 여유가 있으며 남에 대해 관대해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모습을 갖는다.
조선조의 유학자들은 양명학을 배격하고 주자학만을 정통사상으로 간주하였다. 이황(李滉)이 어린 임금 선조를 위해 유학의 정수를 간추려 만든 《성학십도》(聖學 十圖)를 보면 성인이 되는 길이 자세히 제시되어 있다. 성인이 되는 공부의 밑바탕을 태극(太極, 理의 총칭)에 두고, 천지를 부모로 삼아 인(仁)으로써 만물과 일체를 이루려고 하였다. 그리고 공경〔敬〕스러운 마음 자세로 소학과 대학을 배우고 오륜(五倫)을 밝히며 마음 공부를 통해 거친 기질을 순수한 본연의 성품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상제(上帝)를 대하는 마음, 큰제사에 임하는 공경스런 자세로 일상 생활 전체를 성실히 살아갈 때 모든 일에 천리가 밝게 드러나리라는 것이다. 이황이 58세 때 저술한 《자성록》(自省錄)의 서문을 보면 성인이 되고자 한 우리 조상들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옛말에는 말을 앞세우지 않았으니, 실행이 못 미칠 것을 부끄러워서라 했다. ··· 틈을 타서 묵은 상자를 찾아 편지의 초고가 남아 있는 것을 베껴 책상에 두고 때때로 읽어 자주 성찰해 본 다.” 제자와 벗들에게 보낸 자신의 편지 22편을 골라 《자성록》을 쓰고자 한 이유는 남에게 한 말을 가지고 자신을 채찍질하고자 한 것이다. 지행합일이 되어야만 성인(聖人)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천인 합일(天人合一) , 곧 하늘의 마음에 내 마음을 합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성인이 되려고 노력한 우리 조상들의 기백에서 지속적인 힘과 영감을 끌어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습을 띠게 된 인간이야말로 참으로 그분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 공자 ; 군자 ; 도 ; 도가 ; 맹자 ; 모든 성인의 통공 ; 묵자 ; 성녀 ; 성덕 ; 성인 공경 ; 시복 시성 ; 유교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1999. 7권 . pp.4751-4759.